멋의 본질을 밝히려고 시도한 초기의 논자들은 신석초, 이희승, 조윤제, 조용민 등이다. 그 가운데 신석초(申石艸)는 그의 '멋설'에서 멋이 한가롭고 여유로운 상태에서 발생한 정제된 감성으로 보았다. 국어학자 이희승은 멋의 본질이 '흥청거림'과 '일탈'에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국문학자 조윤제는 '멋이라는 말'이라는 에세이를 통해 이희승의 일탈론을 비판하고 멋은 '조금 어긋난 행동' 즉 파격에서 생겨난 것이며, 한국적 미의 특징은 '은근과 끈기'로 파악하였다. 이들의 언급은 멋의 기원과 특성을 다룬 것으로서 멋의 일탈과 변형적 특성이 단편적으로나마 드러났다.
조지훈은 민족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파악
고유섭은 '즐거움 주나 통일성 결여' 비판
조지훈은 '멋'을 민족미학의 중심 개념으로 파악했다. 기존의 멋론을 종합한 '멋의 연구'에서 그는 '아름다움'과 '고움', '멋'을 한국 예술의 기본 범주라고 전제하고 그 가운데 '멋'은 한국적 미의 중심이요 이상이었으며 지도적 기능을 지닌 미적 범주였다. 그는 멋의 낙천적인 민족 정신이 정상과 규격을 뛰어넘는 변형미의 형식을 통해 다양성과 율동성을 드러낸다고 보았다. 지훈은 '멋의 예술론'으로 나아갔다. 멋의 예술은 슬픔 속에 신념의 힘을 갖춘 것이며, 소박하고 구수한 가운데 밝고 휘영청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그리고 멋의 예술은 고고한 예술성이라기보다는 평민적 소박미에 가깝다고 보았다. 지훈은 멋이 동양의 은일사상의 발현이며, 주자주의와 획일주의적 유교 전통에 대한 소극적 반항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미학자 고유섭은 '멋'의 본질을 다양성의 발휘라고 보았다. '조선미술문화의 몇낱 성격'에서 멋의 의미는 맵시를 부리는 몸짓이나 몸가짐을 뜻하는 '태가락'과 같은 뜻으로 풀이하면서, 상상력과 구성력을 드러내는 민족예술의 창조성의 한 측면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멋'은 즐거움을 줄 수는 있으나 종종 중심을 잃고 들뜨거나 통일성이 결여되는 형태로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진실성을 잃고 예술성으로 승화되지 못할 경우 '거들먹거들먹하는 '군짓'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우현은 '멋'보다는 '구수한 큰 맛'이라는 개념으로 민족 미술의 특징을 파악하려 했다.
차이 존중·다양성 포용 '관용의 미덕' 발견
'창조적 발전 내포' 문화적 효용성은 현재적
우리 일상생활에서 '멋대로'는 '마음대로'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또 '도포를 입고 논을 갈아도 제멋'이라는 속담류에서 보듯이 다소 냉소적 뉘앙스도 포함되어 있지만 다른 사람의 판단을 존중하려는 태도도 엿보인다. 민중의 언어에서 멋의 용례에는 개인의 미적 기준이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어 개성적이며 주관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차이를 존중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관용의 미덕도 발견할 수 있다.
멋은 파격과 일탈을 통해 보는 이로 유머와 즐거움을 주며 흥겨움으로 소통할 가능성을 남긴다는 점에서 현대적 미학 범주일 수 있다. 이는 예술의 행위자와 관람자가 합일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멋의 민중미학적 자질은 최원식 교수가 그의 '멋에 관한 단상'에서 환기한 바 있다. 멋은 신명에서 출발한다. 엄숙미와 고전적 아름다움과 달리 고착된 질서를 흔들어 변화를 추구하려는 무의식적 충동이다. 획일성을 거부하는 태도와 창조적 발전의 계기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멋'의 문화적 효용성은 의연히 현재적이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