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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배 시인
매화 꽃 몽우리가 잠 이루지 못하는 봄밤이다. 진달래 붉은 마음이 울렁이는 봄밤이다. 꽃다지 싹들이 서로를 시샘하는 봄밤이다.

장옥관 시인은 봄밤을 이렇게 노래했다. '돼지가 생각나는 봄밤이다/돼지감자가 땅속에서 굵어가는 봄밤이다/시커먼 돼지들이 벚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는 /봄밤이다 하이힐을 신은 돼지/뻣뻣한 털로 나무 밑동을 자꾸 비벼대는 봄밤이다/미나리꽝엔 미나리가 쑥쑥 자라고/달은 오줌보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고/여린 꽃잎은 돼지의 콧잔등을 때리고/깻잎머리 여중생들이 놀이터에서 침을 퉤퉤 뱉다 돼지를 만나는 봄밤이다 봄밤에는 돼지가 자란다/천 마리 만 마리 돼지들이 골목을 쑤시다가/캄캄한 하수구로 흘러드는 봄밤/풀어 놓은 돼지들을 모두 풍선에 매달아/하늘로 띄우고 싶은/봄밤이다'.

'봄밤'의 돼지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일 것이다. 욕망은 진화와 발전의 에너지이기도 하고 절망과 파산의 원인이기도 하다. 정치가 성인 남성들의 안주거리가 된 지 오래다. 안주거리가 진지해지면 서로 핏대를 세운다. 상대방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보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들이 그러하니 국민들도 그렇게 학습되는 양상이다. 지지하는 정당이 다르거나 미래를 거는 정치적 지향점, 예컨대 보수냐 진보냐에 따라 서로 먼 길로 들어선다. 서로의 주관성을 인정하고 타협하려는 여지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점점 극단적인 보수주의와 극단적인 진보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꿈꾸는 밤이지만 현실은 달라
홀몸노인들 속풀이 말벗 있어야
지자체 보살펴주지만 충분치 못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말했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망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는 모든 조직은 좋은 것을 달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형성되며 국가는 그런 조직의 완성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국가는 최종 형태이며 최선의 목적이 되는 것이다. 국가는 구성원 각자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수립해나가야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은 외부적인 선, 즉 물질적인 선과 육체적인 선, 그리고 정신적인 선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선을 이루겠다는 목적과 그것을 행동을 통해서 실천하는 상태라고 정의한다. 이 말은 개인에게는 중용의 삶이 중요한 것이고 국가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권력이 국민의 손에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은 운이나 우연의 소산이 아니라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절제라는 육체적인 선을 추구하고 정의라는 영혼의 선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선조들이 수분과 지족을 중시했던 것은 절제라는 덕목을 실천하는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봄밤은 이런저런 상념을 갖게 한다. 장옥관 시인이 돼지라는 욕망의 상징을 시로 형상화 한데는 이와 같은 시인의 고뇌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는 '시커먼 돼지들이 벚나무 아래를 돌아다니는 봄밤'이라고, 하이힐을 신은 돼지가 뻣뻣한 털로 나무 밑동을 자꾸 비벼대는 봄밤이라고 은유화한다.

그는 '천 마리 만 마리 돼지들이 골목을 쑤시다가/캄캄한 하수구로 흘러드는 봄밤'이라고 오늘 한국 사회의 물신주의를 아파한다. 시인에게는 낮은 곳의 외로운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눌린 사람들이 관심의 대상이다. 양지바른 곳보다는 그늘진 곳, 중심보다는 변방에 늘 시선이 닿는다.

이웃들의 따스한 정이 더 필요
그것이 고독사 막는 '사회적 배려'


봄밤은 꿈꾸는 밤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독거노인들에게는 말벗이 필요하다.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이런 분들의 삶을 보살피고 외로움을 덜어드리는 사업을 펼치지만 그것으로 충분할 수 없을 것이다. 이웃들의 따스한 정이 더 필요할 것이다. 그것이 고독사를 막는 일이며 그분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일 것이다.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한다. TV의 광고도 예술적인 어법으로 제작되지 않으면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지 못하는 세상이다. 노인들에게는 예술적인 광고가 해독되지 않는 암호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사회 전체가 해독되지 않을 수도 있다.

/김윤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