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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
오래전 일이다. 2007년 2월12일 월요일 아침, 출근길에 우울한 뉴스를 접했다. 법무부 여수 출입국관리소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9명이 죽고 18명이 화상을 입었다. 방송 보도를 보는 내내 부끄러웠다. OECD 선진국을 자처하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시설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인권 사각지대에서 그들은 한 줌 재로 사라졌다. 어처구니없는 죽음은 인권국가로 포장된 대한민국의 싸구려 인권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외국인 보호시설에서 인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욕설과 폭행은 예사였고, 일부 시설은 햇빛조차 들지 않는 반 지하실이었다. 전국 18개 소에 달하는 외국인 보호시설은 사실상 범죄자를 다루는 '감금'시설로 이용돼 왔다. '보호'는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전락하면 누구도 도움 받지 못했다. 그들은 절망과 외로움 속에서 '코리아 드림'이 아닌 '코리아 나이트메어(악몽)'를 겪으며 분노를 키웠다. 


열악한 주거환경서 잇따른 죽음
인종 차별로 대하는 인식도 낮아


이제는 달라졌을까. 최근 태국에서 온 60대 남성 이주 노동자가 경기도 포천 돼지농장에서 숨졌다. 농장주는 야산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구속됐다. 불법 체류 신분이었던 그는 비위생적 환경 축사에서 생활하다 비극을 맞았다. 지난달에는 고창에서 50대 태국인 부부 이주 노동자가 밀폐된 방 안에서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 경기 포천과 전북 고창에서 발생한 이주 노동자 사망 사건은 아직도 우리 사회가 가야할 길이 멀다는 걸 보여줬다.

여수 외국인 보호시설 화재 사고 이후 15년여가 흘렀다. 하지만 외국인 보호시설은 여전히 인권 사각지대로 거론된다. 2021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코로나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외국인 보호시설을 일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시설에 수용된 1천65명 전원이 코로나19 양성자로 판명됐다. 33㎡ 남짓한 공간에 18명을 수용했는데 수용자 300여명 당 의사는 1명에 불과했다. 의료 사각지대에서 발생한 참사였다. 인권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위선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외국인 이주 노동자를 대하는 우리 사회 인식도 낮다. 나라를 구분해 차별 대우하는 게 대표적이다. 동남아시아 이주 노동자와 달리 유럽인과 미국인은 깍듯이 예우한다. 불법 체류자에 대한 처분에서 극명하게 드러나 매번 형평성 논란을 빚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외국인 불법 체류자 가운데 중국 조선족과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 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강제 추방 비율은 30%를 넘었다. 반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출신 강제 추방 비율은 1~2%에 불과했다. 법무부가 작성한 '2005년 출입국관리법 위반자 국적별 처리 현황'에 따르면 아시아계는 불법 체류자 9만5천435명 중 38%(3만5천797명)가 강제 추방됐다. 방글라데시 68.4%, 네팔 65.5%, 베트남 51%, 태국 46%, 필리핀 44.8% 등 절반 이상 쫓겨났다. 반면 미국은 1.3%, 캐나다 9.8%, 일본 0.8%에 그쳤다. 2021년 강제 출국자 통계 또한 마찬가지다. 전체 강제 출국자 12만1천225명 가운데 중국과 베트남, 태국, 몽골 국적 노동자는 66%(8만102명)를 차지했다. 인권과 평등을 지향하는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뿌리 깊은 인종 차별 현주소다.

3D업종 중요역할 한국사회 지탱
관련 법 개정하고 불법체류 악용
임금체불 반복·인권침해 멈춰야

법무부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노동자는 215만명(2023년 1월 기준)에 달한다. 이 가운데 불법 체류 신분은 41만명으로 집계됐다. 외국인 노동자는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다. 이른바 위험하고 더럽고 힘든 '3D 업종'에서 이주 노동자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맞물려 앞으로 이주 노동자는 보다 높은 비중을 차지할 게 분명하다. 지금처럼 언어 소통이 힘들고 불안정한 체류 신분을 악용해 인권침해나 임금체불을 반복한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이주 노동자는 이방인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이웃이다. 이주 노동자 인권을 보장하고 동등하게 대하는 건 당연하다. 인식 변화와 함께 관련 법 개정, 그리고 불법 체류 신분을 악용한 인권침해를 멈춰야 한다. 이주 노동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할 때 우리 사회는 한발 나아갈 수 있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