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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
한솥밥을 먹는다고 한다. 좁게 보면, 함께 생활하며 집안 식구처럼 가깝게 지낸다는 뜻이다. 크게 보면, 한 나라의 구성원이자 나아가 민족을 의미한다. 고대 중국에서 밥 짓는 가마솥을 권력과 권위의 상징으로 삼은 것도 이런 배경 아닐까. 가마솥은 한자로 정(鼎)이다. 전설에 따르면 요순(堯舜)에 이어 천하를 다스린 우(禹) 임금이 아홉 제후들이 바친 청동으로 가마솥 아홉 개를 만들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 사용했다고 한다. 천자(天子)를 상징하는 구정(九鼎)의 유래이다. 그런데 이 가마솥을 지탱하는 발은 세 개이다. 발 하나가 길거나 짧아도 솥은 균형을 잃는다. 또 발과 발 사이가 너무 떨어져 있으면 솥은 안정적이겠지만 옮기기도 힘들고 군불을 때 밥을 짓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발과 발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조금만 밀어도 쓰러지기 쉽다.

인간 사회도 그렇다. 현대 사회를 지탱하는 세 발은 아마도 권력과 금력과 명예가 아닐까.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너무 길거나 짧아도 불안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예컨대 정치인이나 행정관료가 돈을 탐하면 어찌 되겠나. 바로 한 국가의 기둥이 썩어 문드러지는 권력형 부패 아니겠나. 재벌이 권력을 쥐락펴락하는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법과 제도를 재벌에 유리하게끔 왜곡하는 정경유착의 시발점 아니겠나. 명예로 먹고 사는 대학교수나 언론인이 권력 주변을 기웃거리면 폴리페서나 폴리널리스트라 불리운다. 금력의 앞잡이가 되면 그야말로 명예를 땅에서 찾아야 한다. 


고대 중국서 권력과 권위의 상징
현대 지탱 세 발 '권력·금력·명예'
적절한 거리·길이 유지해야 건강


따라서 건강한 사회는 권력과 금력과 명예가 적절한 거리와 길이를 유지할 때 구현된다. 과연 지금 한국사회는 어떠한가. 권력이란 발이 너무 길고 굵은 것은 아닌가.

윤석열 정권에서 정부의 주요 직책에 검사 출신 70여 명이 보임됐다고 한다. 준사법기관으로 수사와 기소가 전문인 검찰 아닌가. 이들이 금융감독원과 국민연금공단과 서울대병원 등 핵심 요직을 꿰찼다. 금융감독원은 금력, 서울대병원은 명예가 상징자본이다. 항간에 '만사검통'이란 탄식이 나오는 연유이다. 아마도 본질적인 문제는 절제의 미덕이 실종된 데서 비롯됐을 것이다. 권력이 금력과 명예까지 탐하고, 금력은 권력과 명예를 제어하려 하며, 명예는 권력과 금력을 기웃거리는 현실 말이다. 이런 상황이 심화하면 권력과 금력과 명예가 한군데로 모인다. 마치 팽이처럼 되는 거다. 빙글빙글 돌지 않으면 이내 쓰러지는 숙명의 팽이 말이다.

절제되지 않은 권력은 폭력일 뿐이다. 절제되지 않은 금력은 탐욕일 뿐이다. 벼리지 못한 명예는 똥 묻은 구겨진 종이조각일 뿐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폭력과 탐욕의 도가니에 시대의 등불이 될 어른과 스승은 보이지 않는다. 가마솥이 권력과 권위를 상징한다지만, 민초에게는 그저 쇳덩어리일 뿐이다. 오로지 가마솥이 지어내는 밥에 관심이 있을 뿐이다. 밥이 곧 하늘이라고 하지 않나. 작고한 시인 김지하는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하늘을 혼자서 못 가지듯이 말이다. 하늘의 별을 함께 보듯이 밥은 여럿이 같이 먹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한국 사회, 절제·미덕의 실종
우리 정치, 과연 '밥' 지을 줄 알까


다시 솥으로 돌아가자. 균형 잡힌 솥에 불린 햅쌀을 올려도 불 조절을 못하면 밥은 설익거나 떡이 된다. 그런데 가마솥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흔들린다면 밥은커녕 솥이 깨질 판이다. 설령 어찌어찌 밥 짓고 국 끓여도 '국 쏟고 손 데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아무리 가마솥이 조각품 수준이면 뭐하나. 밥을 제대로 지을 수 없다면 한낱 솥처럼 생긴 조형물일 뿐이다. 솥의 발이 세 개인 이유는 균형잡기에 가장 유효하기 때문이겠다. 발이 네 개이면 필시 하나가 들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비효율적이다. 현대 국가에서 삼권분립이 정착된 것도 솥발과 무관치 않겠다. 행정 입법 사법이 삼권인데, 이 삼권의 한 발이 길거나 짧으면 곧 민주주의의 위기이다. 한데 아예 삼권이 한 점에 모이면 이 또한 돌지 않으면 쓰러질 팽이가 아니겠나.

중국이 솥에 관심이라면, 우리는 밥에 진심이다. 밥이 곧 하늘인데, 권력의 가마솥에 정신이 팔린 우리 정치는 과연 밥을 지을 줄 알기나 하나.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