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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흔히 재능은 타고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반은 맞는 이야기다. 한자어 재능(才能)의 '才(재)'는 초목의 싹이 아직 땅 아래에 묻혀 있는 모양을 그린 것이고 '能(능)'은 곰을 그린 상형문자로 곰처럼 강한 힘을 의미하는 글자다. 따라서 이 두 글자가 합쳐진 재능이란 말은 아직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인 능력을 가리키는 말이다. 곧 재능은 각 개인이 나면서부터 지닌 고유의 능력으로 사회의 영향과 상관없이 타고나는 것이다. 이른바 능력주의는 재능의 유무에 따라 사람마다 역량의 차이가 있게 되므로 이를 기준으로 사회적 재화를 차등적으로 분배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국부론'의 저자 애덤 스미스는 재능의 차이가 한 사람이 지닌 역량의 상이함에서 기인하기보다 사회적 분업에 따라 결정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주장하면서 지게꾼과 학자를 예로 들었다.

"사람들이 가진 재능의 차이는 실제로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작다. 성인이 되었을 때 여러 직업의 사람들을 구별 짓는 것처럼 보이는 자질상의 큰 차이도 분업의 결과인 경우가 많다. 가령 학자와 거리의 지게꾼은 전혀 닮지 않은 성격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처럼 보이지만 이 또한 선천적인 차이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습관과 풍습 및 교육에 의한 것이다. 그들이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또 그 뒤의 첫 6년 내지 8년 동안은, 그들은 아마 매우 비슷했을 것이고, 그들의 부모나 놀이 친구들도 별로 두드러진 차이를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나이 때, 또는 그 얼마 뒤에 그들은 아주 다른 직업에 종사하게 된다. 그 무렵 재능의 차이가 눈에 띄게 되며, 그것이 차츰 커져서 마침내 학자의 허영심이 지게꾼과는 거의 아무런 유사점도 시인하지 않으려 하기에 이른다." 


아직 안 드러난 잠재적 능력 지칭
애덤 스미스 '능력주의' 반박 주장
"사람들 간 차이, 생각보다 작아"


재능의 형성과 기원에 관한 애덤 스미스의 이 주장을 전적으로 옳다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같은 분야, 같은 조건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재능에 따라 성취에서 현격한 차이를 보이는 경우 또한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직업군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소수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적어도 직업을 선택하는 데서만은 타고난 재능이 생각보다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의견은 수긍할 만하다.

트럭 운전수와 가수의 재능이 얼마나 다를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트럭 운전수에게 트럭 핸들을 잡게 하거나 마이크를 잡게 하거나 하는 차이는 어디서 나올까? 트럭 운전수와 가수는 전혀 성격이 다른 직업군으로 보이지만 공통적으로 큰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둘의 재능은 비슷하다. 더욱이 감미로운 목소리의 소유자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테너 가수 마리오 란자나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 프레슬리가 모두 트럭 운전수 출신이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둘의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할 수 있는 예술의 영역에서조차 이와 같다면 다른 직업군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가능한 많은 이들에 발휘 기회가
골고루 주어질때 세상 아름다워져


흔히 한 분야에서 뛰어난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재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재능보다 기회가 더 중요하며 기회는 개인의 노력보다 운에 따르는 경우가 더 많다. 당연히 운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운이 아닌 능력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데 쉽게 동의한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에 따르면 능력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습관이나 풍습, 교육에 이미 운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운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동등하게 제공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를테면 소수의 싹수가 보이는 인재들만 골라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엘리트 교육 따위는 정의롭지 않을 뿐 아니라 마리오 란자나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천재들을 탈락시킨다는 점에서 세상에 유익하지도 않다. 그들이 무대에 설 기회를 얻어 재능을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그만큼 더 아름다워진 것처럼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질 때 세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