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축소판 경기도는 당선자 열 중 일곱(125명)이 수성에 성공했다. 셋은 리턴매치에서 승리했다. 초선은 52명(28%)에 그쳤다. 60대가 125명(69.5%)으로 압도했다. 50대 38명(21.1%), 70대 이상 17명(9.4%) 순이다. 40대 후보 6명은 전멸했다. 조합장 전원이 쉰을 넘었고, 최연소가 50세다. 평균연령만 높아졌을 뿐 4년 전 선거와 닮은꼴이다.
현직이 절대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기회는 불평등, 과정은 불공정, 결과는 정의롭지 않다. 임기내내 조합원을 관리하는 조합장과 달리 도전자는 얼굴조차 알릴 방도가 마땅치 않다. 조력자 없는 '나 홀로' 홍보에, 그 흔한 현수막도 걸지 못한다. 선거기간(2주)에만 유권자 상대 문자 전송, 통화가 허용된다. 토론회도 열리지 않는 '깜깜이' 선거를 중앙선관위가 주관한다. 조합장은 선거 직전까지 자리를 지키며 프리미엄을 누린다. 20% 넘는 조합이 무투표인 까닭이다. 현직이 양보하지 않으면 사실상 기회가 없는 상황인 거다.
현직, 선거 직전까지 프리미엄 누려 '유리'
특정인 수십년 독식·친위대 '그들만의 세상'
상임조합장은 연임만 허용되나 비상임조합장은 제한 규정이 없다. 당사자 의지면 무한 출마가 가능하다. 이런 연유로 파주에선 6선 신화가 탄생했고, 오산 포천 김포 파주에선 5선 조합장이 배출됐다. 전국으로 넓히면 5선 넘는 조합장이 널렸고, 10선 기록이 있다. 보좌그룹인 이사, 감사도 연임제한이 없다. 서로가 끌어주고 밀어주며 20~40년 왕좌를 지켜낸다.
비상임조합장을 두게 된 사유가 있다. 조합장에 편중된 권한을 분산하고, 운영 전반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조합원의 실익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다. 뻔한 틈새를 놓칠 리 없다. 전국 조합장 열 중 넷은 비상임이다. 특정인이 수십 년 독식하고, 친위대가 호위하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지난해 호남지역 야당 의원이 비상임조합장, 이사, 감사도 연임만 허용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무슨 연유인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고, 5선에 6선 조합장이 재림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장기집권과 특정세력의 독식은 부패와 쇠락을 부른다. 윗물이 흐리니 아랫물이 맑을 수 없다. 지난해 광주, 파주에서 직원이 수년간 고객 돈 수십억 원을 빼돌렸는데도 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조합장을 제어할 통제수단이 마땅치 않으니 전횡과 독선을 막아내기 힘들다. 친인척 채용 비리, 일감 몰아주기, 납품 비리는 점잖은 일탈이다. 직원 성추행에, 손찌검과 발길질을 서슴지 않는다.
지역조합의 근원적 고민은 따로 있다. 조합은 조합원 출자를 기반으로 하는 상조 조직이다. 농촌지역은 1천명, 도시지역은 300명 넘는 조합원을 확보해야 한다. 농·어업인은 감소하는데 조합원 수는 그대로인 이상한 조합이 수두룩하다. 이농·이촌은 늘어나고, 청년 조합원이 줄어드는데 대체 뭔 조화인가. 애초 자격이 없거나, 상실한 조합원이 혜택을 누리고 유권자 행세를 한다. 가짜 조합원을 색출하고 나면 해산해야 할 조합이 속출할지 모른다. 이런 사정을 모를 까닭이 없는데, 지역조합도 농협중앙회도 외면하고 만다. 조합원 수가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고인물 썩게 마련 장기집권 부패·쇠락 불러
조합원수 판도라 상자… 감사 시스템도 취약
폐단을 막을 자정 기능에, 감사 시스템도 취약하다. 조합장이 평생 직업인 장기집권에, 견제구가 마땅치 않으니 두려울 게 없다. 횡령에 배임, 채용, 납품 비리 등 폐해가 반복된다. 경기도만 31개 시군, 180개 조합이다. 농민이 귀한 대도시도 5~10개 조합이 교집합 경쟁을 한다. 사정이 이런데도 통·폐합은 금기어가 됐다. 진화를 멈춘 갈라파고스 섬 거북이와 다를 게 없다.
농협중앙회 회장은 단임이다. 4년으론 부족하다며 연임으로 바꾸려 한다. 시간을 벌어 중앙회와 지역농협을 통째 바꿀 요량이라면 지지할 만하다. 무자격 조합원을 정리하고, 비대해진 조직을 수술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한다. 임기 중이라도 개혁을 위해 직(職)을 걸겠다는 결기가 없다면 4년도 길다. 시한폭탄이 된 지역조합, 보고만 있을 건가.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