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차 기사가 안 해도 되는 위험한 일까지 떠맡아 하고 있어요…."
인천 신항 컨테이너터미널을 드나드는 화물차 운전기사인 박성훈(가명·43)씨는 이렇게 말했다. 평소 인천 신항 컨테이너터미널 입구 주변에는 차량에 싣고 온 컨테이너를 점검받으려는 화물차들이 늘어서 있다.
선사가 고용한 점검원이 컨테이너 손상 여부 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화물차 기사들은 사고 위험에 노출된다. 이들은 안전모 등 기본적인 안전 장구도 갖추지 않은 채 대기 중인 화물차들의 비좁은 틈을 오가며 점검을 받고 있다. 커다란 컨테이너에 위험천만하게 매달려 문을 여닫는 일도 다반사다.
문 개폐·스티커 제거 등 다시 떠맡아
"화주·선사업무 울며 겨자먹기 감수"
안전운임제가 지난해 12월 말을 끝으로 일몰되면서 우려가 현실이 됐다는 화물차 기사들의 푸념 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21년 3월 고시된 안전운임제는 컨테이너 문 개폐 작업, 컨테이너에 부착된 위험물 스티커 제거 작업, 컨테이너 세척 작업 등을 차주에게 시킬 수 없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이 조항이 지켜지지 않자 화물차 기사들은 문 개폐 업무 등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에 인천지방해양수산청,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선주협회, 인천항만공사, 하역사, 운송사 등은 협의를 통해 그해 4월 선사나 하역사 등이 안전운임제를 지켜 화물차 기사들의 고충을 덜어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안전운임제 일몰 이후 화물차 기사들은 문 개폐 등 업무를 다시 떠맡게 됐다.
이를 두고 박씨는 "화물차 기사들이 문 개폐나 위험물 스티커를 제거하다 떨어져 다치는 경우가 많다"며 "컨테이너는 선사나 화주의 것인데 우리가 왜 유지·관리를 해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어 "기사들은 운행 시간이 곧 수입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빨리 컨테이너를 내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는데, 항만 운영사는 점검받지 않은 컨테이너는 내려주지 않는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 업무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항만공사·해수청 "감독 권한 없다"
이와 관련해 인천지역 항만을 관리·감독하는 인천항만공사 관계자는 "문 개폐 등의 업무를 선사에게 하라고 강제할 권한이 없다"고 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 관계자도 "인천의 항만 운영사들과 관련된 문제라면 협의에 나설 수 있는데, 선사의 경우엔 인천에 지사를 두고 본사가 따로 있어 우리 해양수산청의 역할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화물연대 인천지역본부 관계자는 "화물차 기사 안전과 관련된 문제를 두고 관계기관이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며 "안전운임제는 조정국면에 들어선 것이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항만공사와 해양수산청 등이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민철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