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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진 지방자치의정연구소장·행정학 박사
지난해 1월 전부 개정돼 시행되는 지방자치법의 핵심 중에 하나가 주민자치 강화다. 개정된 지방자치법 제1조 목적 부문에 '주민의 지방자치행정 참여'가 추가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역 현장에서 보면 여전히 지방정부의 정책 참여에 대한 주민의 권리행사는 매우 미약한 실정이다.

대표적인 것이 '주민조례발안제'다. 지방의회에서 만들어지는 조례 발의에 주민도 직접 조례를 만들어 지방의회에 심의를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주민조례청구제가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는 데는 몇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첫째, 주민이 직접 조례를 발의할 수 있다는 주민조례청구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많은 주민이 잘 알지 못한다. 심지어 필자가 전국의 지방의회 의원들을 상대로 지방의정 관련 교육을 진행할 때 물어보면, 지방의원들조차도 주민조례청구제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경우를 종종 봤다. 홍보를 제대로 안 한 까닭이다.

둘째, 주민조례청구제도를 안다고 해도 일반 주민 입장에서는 조례를 직접 지방의회에 청구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고 어렵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전문적인 법률지식과 조례를 만드는 절차나 방법을 모르는 주민들은 원천적으로 접근 불가다.

셋째, 어렵사리 조례안을 만들어도 지방의회에 해당 조례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사람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 현재 경기도의회에 조례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경기도 거주 만 18세 이상 청구권이 있는 주민의 350분의1 이상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2023년 기준으로 이 숫자가 무려 3만2천951명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안양시의 경우 시의회에 조례를 청구하기 위해서는 청구권자의 100분의1 이상 서명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만도 4천733명이다. 정부에서는 주민의 서명을 쉽게 받을 수 있도록 '주민e직접'이라는 홈페이지 안에서 전자서명을 받을 수 있도록 했는데, 3개월에서 6개월 동안의 서명기간이 끝난 조례안 대부분이 서명인원 미달이라 지방의회에서 심의조차 안 한다.

넷째, 서명 충족인원을 맞췄다고 해도 마지막 난관이 남아있다. 형식과 내용의 부실함뿐만 아니라, 지자체의 소관사무에서 벗어나거나 상위법령 위반 등의 문제로 아예 발의자체가 안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고생해서 서명받은 노력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주민조례청구제를 통해 주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조례를 만들지 말라고 두터운 장벽을 세운 것이나 다름없다.

정말 주민에 의한 조례발의는 불가능할까. 제도 운영방식에 대한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째, 정부에서 만든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의 전면 개정이다. 청구요건을 비롯한 세부적인 방법과 절차는 지방의회의 조례로 대폭 위임할 것을 주문한다.

둘째, 지방의회 차원에서 법률 개정과는 별도로 주민조례청구를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제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지방의원들도 대부분 발의 취지와 주요 내용을 의회 소속 전문위원들과 상의해서 조례안을 만든다. 의원발의 시스템을 주민조례청구제에 접목해 적용하는 것을 제안한다. 좋은 아이디어나 개선할 정책이 있으면 해당 지방의회에 주어진 양식에 맞춰 청구취지와 내용을 먼저 접수하고 지방의회 소속 전문위원실에서는 제안된 내용이 발의가 가능한지 여부부터 검토해 제안한 주민에게 회신한다. 그 다음 주민이 지방의회에 해당 조례안 발안을 요청하면 전문위원실에서는 조례안을 작성하고, 해당 조례에 관심이 있는 의원 중에 한 명이 대표발의하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고, 조례안을 심의·의결할 때는 해당 조례안이 주민이 제안해 발의한 조례안이라고 명시하면 된다.

주민이 없는 지방자치제도는 무용지물이다.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주민조례청구제를 반드시 활성화하겠다는 지방의회의 강력한 의지와 함께 전담 부서를 비롯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주민 홍보도 필수다.

/박용진 지방자치의정연구소장·행정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