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은 여러 나라의 국경을 넘어 바다와 산으로 돌아다녔다. 어린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라기보다 바퀴 위의 집에서 살아가는 일에 가까웠다. 순조롭던 여정은 파나마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는데, 코로나로 모든 길이 막혔기 때문이다. 결국 자꾸 퍼지던 캠핑카도 처분하고 봉쇄가 풀리자 가족 모두 한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나라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이제 다시 아빠의 나라인 아르헨티나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4년간 세계일주 가족여행 마친 친구
몇년전 집 사고 "언제든 떠날수 있어"
돌아간 친구에게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긴 여행을 하게 되면, 떠날 때의 기쁨과 돌아올 때의 기쁨 중에 어느 것이 더 컸어?"라는 것이었다. 젊은 부부가 아이 둘을 데리고 세계일주의 첫 발을 뗐을 때의 설렘, 산전수전에 코로나까지 겪고 4년 만에 훌쩍 큰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의 안도감은 성질이 다르겠지만 어느 것의 '진동'이 더 컸을지 궁금해서였다.
이런 질문은 '오디세이'를 읽다가 떠올랐다. 트로이 원정을 떠날 때 오디세우스는 아내와 아들이 있는 이십 대의 젊은 남자였다. 더 큰 세상, 공을 세우고 막대한 전리품을 누릴 수 있는 전쟁이라는 무대로 나아가는 그의 옆에는 아킬레우스와 같은 그리스 최고의 장수와 아가멤논, 아이아스와 같은 영웅들이 있었다. 수많은 배와 부하들, 바다와 태양과 미래가 거기 있었다. 아직 실체가 보이지 않는 영광이라는 약속도.
돌아올 때의 오디세우스는 전쟁과 풍랑을 겪을 대로 겪은 중년의 남자다. 십 년의 전쟁 끝에 빛나는 동료들은 대부분 전사했고, 간신히 승리해 고국으로 뱃머리를 돌리지만 포세이돈의 방해로 고난을 거듭한다. 그의 지혜는 이제 생존에만 바쳐진다. 돼지로 변한 부하들, 마녀와의 사랑, 거인을 물리치던 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세이렌의 노래… 전리품은 오직 '기억'으로만 이루어져 있을 뿐, 가진 것 없는 중년 사내가 거지꼴이 되어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
'일리아스'가 영웅들의 전쟁이야기라면 '오디세이'는 훨씬 더 소박한 테마, '집으로 돌아오다'를 다룬다. 나에게는 늙은 개 아르고스가 주인을 알아보고 혀로 손을 핥다가 죽는 장면이 헥토르의 죽음만큼이나 크게 느껴진다. 활을 들어 아내의 구혼자들을 물리치고 마침내 20년의 모험을 완수하며 가족의 품에 안기는 오디세우스. 그때 오디세우스에게 한없는 안도감이, 내가 내 자리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으리라.
여정후 집에온 친구왈 "들어오면
유칼립투스 향에 돌아왔다는 실감
찰나의 감각 인생에 거의없을 순간"
이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생각의 저울이 있어 무게로 달 수 없는 것들을 견주어보게 만든다. 세상에 도전할 때의 벅찬 환희, 긴 여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의 평화.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마음의 동요를 가져왔는가는 사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게다가 이 둘은 연결된 기쁨이다. 떠나는 자만이 돌아올 수 있으니까.
'고향의 비밀은 머무르는 자가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이곳으로 돌아오는 자에게만 열린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처럼, '여정'이 없으면 모험도 없고, 기쁨과 안도감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내 친구는 한 가지 대답만 했다. 친구의 집은 유칼립투스 나무로 지어져서 독특한 향이 나는데, 집에 들어오는 순간 나무 향에 감싸이면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고. 그건 아주 찰나의 감각일 것이다. 하지만 인생에 거의 없을 찰나이기도 하다.
/김성중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