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 교리의 원점은 원죄설이다. 뱀의 유혹에 걸린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는다. 하느님을 배신한 첫 조상의 원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 최소한 기독교적 인류들은 죄의 대물림에 갇혔다. 원죄설은 죄 짓는 인간의 기원에 대한 하느님의 증언이니 증명할 필요가 없다. 끊임없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나라를 위협하는 인간을 원죄설 없이 설명할 도리가 없다. 그래야 속죄하는 인간들의 종교적 공동체가 가능해진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는 오이디푸스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숙부에게 복수하는 햄릿의 비극은 신화가 아니다. 당 현종은 며느리 양귀비를 후궁으로 삼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막장 범죄는 즐비하다. 당장 우리 현실에서도 패륜적인 가족 범죄가 끊일 날이 없다.
원죄론의 실용성은 참회를 통한 실존의 회복이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원죄로 인정한 독일은 철저한 국가적 참회를 통해 새롭게 부활한다. 반면 제국의 원죄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은 경제적 지위에도 퇴행적 사무라이 시절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끼리 친일·반일로 싸워대봐야, 죄의식 없는 일본 앞에서, 우리 스스로 식민시대에 갇힐 뿐이다.
기독교 원죄론이 없었던 동양에선 불교의 '업'(業) 개념으로 죄 짓는 삶을 경계했다. '업'은 원인이고 '업보'(業報)는 결과다. 조상이 지은 업의 선악이 자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 언행에 신중을 기했다.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친손자 전우원씨의 기행(?)으로 사회가 시끄럽다. 별안간 SNS를 통해 "할아버지는 학살자"라고 했다. 아버지 전재용은 검은 돈으로 살고 있고, 숙부 전재만은 검은 돈으로 미국 나파밸리에서 와이너리를 운영 중이란다. 검은 돈으로 유학한 자신도 범죄자라 했고, 검은 돈 세탁 과정도 밝혔다.
급기야 지난 17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마약 추정 물질을 복용해 횡설수설하던 중 미국 경찰에 강제 구인되는 소동을 벌였다. 아버지 전씨는 "아들이 많이 아프다"며 사죄했다. 하지만 가족 전체가 치욕적인 처지가 됐고, 전두환 비자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재발했다.
전 전 대통령은 쿠데타와 광주학살에 사과하지 않았다. 미납한 추징금액만 1천억원이다. 자신이 지은 업 때문에 자손들이 업보를 치른다 생각하면, 할아버지 전두환은 저승에서도 편치 않을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