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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프로야구는 5회 말 종료 후 운동장 정비시간을 갖는다. 후보 선수들도 가볍게 몸을 푼다. 양팀 선수들은 자연스럽게 만난다. 이때 '훈훈한' 장면이 연출된다. 인사는 물론 악수와 포옹을 하기도 한다. 경기 중에도 주루코치는 상대방 덕아웃을 지날 때 인사하고 주자는 수비수와 대화한다. 잘 모르는 사람은 이 모습을 보면 흐뭇하다. 야구인들은 정이 있구나! 그러나 오래된 팬의 입장은 다르다. 이들은 프로선수인가, 동호인인가. 야구장은 경기장인가, 사교장인가.

2019년에는 황당한 일이 있었다. 2루에 진출한 주자가 상대 수비수와 '수다' 떠는 사이에 견제사당했다. 팬들은 재빠르게 '잡담(雜談)주루사'로 명명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에 있었다. 그 선수가 선발 출전했다! 그는 올림픽 출전의 베테랑으로서 FA(프로 데뷔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선수가 팀을 선택하는 제도) 고액연봉자다. 후배들의 롤 모델이라 할 만하다. 그래서 더욱 단호한 조치가 필요했다. 그러나 징계는커녕 선발 출전이 이어졌다. 감독의 리더십은 무너졌을 것이다. 후배들은 경기중이어도 상대팀 선배들에게 인사하는 것을 야구인의 예의로 배울 것이다.

야구규칙에 친목금지 조항이 있다.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은 경기 전·중·후에 관중과 대화할 수 없다. 선수를 포함한 감독, 코치도 유니폼을 착용하면 경기중은 물론 경기 전에도 상대 선수에게 말을 걸거나 친한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즉, 야구장은 승부하는 곳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야구규칙은 경기의 목적이 승리라고 분명하게 정의한다. 규칙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물론 미국 선수들도 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처럼 대놓고 친한 척하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선수에게 경기 기본 목적은 '승리'
WBC서 세리머니 어이없는 실책
재미·감동 아닌 스트레스만 늘어


야구월드컵(WBC) 이후 한국 야구의 여러 문제점이 제기되었다. 세대교체, 선수연봉, 고교야구, 대표팀 선발, 감독 리더십과 주루 플레이 실책 등등. 모두 일리 있다. 그렇지만 가장 기본적인 질문은 없었다. 왜 야구를 하는가? 경기의 목적은 무엇인가. 선수, 관계자, 팬 모두의 고민이 필요하다.

선수에게 야구의 목적은 승리다. 그것이 기본이다. 지도자들은 야구의 목적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쳐야 한다. 흔히 선수들에게 경기를 즐기라고 한다. 그러나 팬과 선수의 입장은 다르다. 팬은 야구장에서 친구를 만나고, 치맥을 즐기며 다른 팬들과 함께 노래 부른다. 팬에게 야구장은 친교와 오락의 장소다. 선수에게 즐기라고 하는 것은 긴장을 풀라는 의미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선수들이 관중과 혼연일체가 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선수는 항상 승리를 생각해야 한다. 냉정을 잃으면 이기기 어렵다. 주루 플레이에서 룰을 무시하고 세리머니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생겼다. 이 실책은 전 세계로 전파되어 한국 야구의 망신거리가 되었다. 기본을 망각한 선수들의 잘못은 분명하게 지적되어야 한다.

야구 관계자들의 고민도 중요하다. 야구의 인기를 통해 매출 증대와 수익 다원화가 그들의 목표다. 영속성을 위해서는 야구 저변이 확대되어야 한다. 특정 팀이 아닌 전체 리그가 활성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명타자 제도를 고등학교에 조기 도입하면 출전 선수 수는 증가하지만 오타니 선수와 같은 야구 신동은 배출하기 어렵다. 알루미늄 배트의 내구성(耐久性)은 나무배트의 매출을 감소시킨다. 모두 다 이해 조정이 필요한 문제다.

누군가에겐 승부·밥벌이와 '직결'
과거 돌아보고 '새로 시작' 계기로


팬들은 재미와 감동을 원한다. 그러나 근심과 스트레스만 늘었다. 경제는 발전하여 일본을 추월한다는데, 어찌하여 야구는 콜드게임패를 걱정하게 되었는가. 정말로 우리가 일본과 대등한 수준인가 자문(自問)한다. 혹시 반도체의 성장과 BTS의 반짝 인기에 취해서 본질을 못 본건 아닐까. 경각심을 일깨웠다면 이번 야구가 기여한 것도 있다.

야구는 그저 공놀이일 뿐이다. 대다수 팬들에게는 여가의 한 수단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매일매일 승부를 하고, 밥벌이와 직결된 사람도 많이 있다. 각자 야구의 의미는 다르다. WBC를 통해 모두 다 과거를 돌아보고 새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봄이 왔다. 야구도 새 시즌이 온다. 새 출발이다. 시작은 좋은 법이다. 희망이 있으므로.

/이영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