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팬데믹으로 미술관 문이 닫혀있던 시간이 길었던 지난 2020년과 2021년, 백남준아트센터는 관객들과의 만남을 기다리며 미디어 아트 작품을 수집했다.
백남준의 작품만을 소장해오던 미술관이 새롭게 수집한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동시대성에 민감함을 갖고 있는 동시에 기술을 정밀하게 분석하며, 인간의 삶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작품들로 이뤄졌다.
특히 미디어 아트는 시간을 다루는 예술인 만큼 이번 백남준아트센터 2023 신소장품전 '시간을 소장하는 일에 대하여'는 다양한 형식 속에서 넓은 시간 스펙트럼 안에 자리한 9작가(팀)의 작품 11점을 감상할 수 있다.
6월 25일까지 작가 9명 11점 감상 기회
원형성-복원 둘러싼 새로운 의미 전달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안규철 작가의 '야상곡 No.20 / 대위법'은 일정한 시간에 동일한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와 연주가 끝날 때마다 피아노의 해머 88개 중 하나를 무작위로 빼내는 조율사가 만들어 내는 음악이다. 연주가 진행될 때마다 음이 하나씩 줄어들고 결국엔 침묵을 향해 다가간다.
아바나의 뒷골목 공터에 놓인 낡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들과 그 건반을 집요하게 갉아먹는 흰 개미떼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작품은 플럭서스적 우연성과도 연결된다.

전시우 작가의 '복원과 변형 사이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어떤 것-K와의 대화'는 부서진 나무 의자에서 떨어져 나간 나무 조각이 쥐의 모습을 하고 있다. K는 훼손된 작품을 복원해 다시 전시하자고 설득하고, 작가는 자신이 가진 복원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다.
현대미술에서 끊임없이 질문되는 원형성, 보존과 복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며, 실제로 어떤 물리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대화를 통해서 작품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노진아 작가의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흰 얼굴에 빨간색 나무뿌리를 몸통으로 한 기계 인형 가이아가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을 한다. 가이아는 지구의 생명체를 동경하며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인간이 되고 싶은 이유에 대해서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운명 같은 것"이라고 대답하고, "인간이 되려고 노력하는 기계는 많지만, 기계가 되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기엔 둘 다 다르지 않은데"라며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또 "난 작가 말고는 엄마가 없다"거나 "기계라고 죽임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말하는 등 철학적이면서도 복잡한 대답을 들려주기도 한다.
원본과 복제물인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 그 경계가 흐려지고 마침내 구분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기계가 생명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작가의 질문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밖에도 김성환 작가의 '드로잉 비디오', 박승원 작가의 '지극히 평범한 하루', 업체eobchae×류성실 '체리-고-라운드' 등을 포함해 동시대 이슈를 긴밀하게 다룬 이번 소장품들은 '시간을 소장한다'는 큰 주제로 묶여 있지만, 또 달리 생각해보면 소장품이 가지는 시간성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백남준의 작품은 오늘날 하드웨어적 보존·복원에 대한 논의는 활발하지만, 작품 자체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시대 미디어 아트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요소들이 계속해서 생겨날 수 있다.
인터렉티브 시스템을 통해 대답을 학습한 '가이아'의 경우 2020년에 구입할 당시 '이 상태로 얼리자'라는 의견이었지만, 2023년에 보여지는 가이아는 작가와의 논의 끝에 업그레이드 됐다. 작가의 역량과 작품세계가 더욱 확장되고 깊어졌기 때문이다.
과연 작품이 만들어졌던 당시의 고정값이 그 작품의 진짜 모습일까, 아니면 이후에 변화한 모습의 작품이 진짜 모습일까. 미디어 아트가 가지는 시간성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 백남준 아트센터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또 다른 길일지도 모르겠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구민주기자 kumj@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