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산이 빠르거나 잔머리를 잘 굴리는 사람을 가리켜 '주판알을 잘 튕긴다'라고 한다. 비속어에 가까운 말이지만, 험한 세상에서 살아가자니 적절하게 주판알을 튕기지 못해도 인생이 고달파진다. 지금은 전자계산기에 컴퓨터까지 있어 주판을 쓰는 일이 없지만,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주판은 유용한 도구였다.
주판은 수판, 산판이라고도 하는데, 지금부터 3천~4천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에서 널빤지에 모래나 분말을 놓고 사용하는 토사 주판이 있었다. 로마에서도 널빤지에 홈을 파고 여러 개의 줄을 긋고 사용하는 형태의 주판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판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흘러들어와 사용되기 시작하여 중국의 발명품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중국에서 주판을 언제부터 썼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후한 시대 서악(徐岳)이 쓴 '수술기유(數術記遺)'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후한 시대 이전부터 사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명 만력 20년(1592)에는 정대위의 '산법통종'이 출판되어 이 무렵(선조 26년, 1593) 전후에 우리에게 수입되었다는 설이 힘을 얻고 있다. '산법통종' 이전에는 남송의 양휘가 저술한 '승제통변산보'(1274), 주세걸의 '산학계몽'(1299) 등 주산과 관련한 책들이 있었다.
우리의 주판이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전해졌으나 근대에 와서는 거꾸로 윗알 1개와 아래알 4개를 사용하는 일본식 주판이 퍼졌다. 1920년 조선주산보급회가 생기고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에서 1936년 주산경기대회를 열면서 학교의 교육현장으로도 널리 퍼져나갔다.
요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다. 어려운 경제 여건과 안보 상황을 고려하여 일본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킬 수밖에 없는 저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미숙하여 내줄 것 다 내주었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아서다. '다만 얻은 것은 오므라이스와 G7 정상회의 초대장이요, 잃은 것은 국익과 역사 인식'이라는 야당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윤석열 정부는 주판알을 잘 튕기는 외교적 능숙함을 발휘해야 한다. 외교의 최우선 순위는 어디까지나 국익이다. 물론 이 원칙은 야당에게도 동일하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