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다수에 반하는 너는 '비정상'… '억울한 유코' 유쾌하게 풀어낸 연극 '억울한 여자'

억울하다

抑鬱하다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거나 하여 분하고 답답하다 

억울한 여자 공연 장면 /수원시립공연단 제공

너무 억울해

주인공 유코(홍민아)가 가장 많이 외친 이 대사에는 한이 서려 있기보단, 유쾌함과 왠지 모를 광기가 한 스푼 들어 있었다. 관객들은 100분 내내 웃으며 극을 따라가지만, 극장을 나설 때는 유머에 숨은 의미를 곱씹으며 자리를 떠나게 된다. '억울한 여자'는 '억울'이란 단어가 품은 중압감을 가볍게 풀되, 주제 의식에는 이를 묵직하게 담아낸 연극이었다.

지난 24일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수원시립공연단의 2023년 첫 정기공연 '억울한 여자'가 무대에 올랐다. "달콤쌉싸름한 블랙코미디"라는 줄거리를 한데 압축한 포스터 문구 덕에 극장은 연인과 부부, 엄마와 딸, 친구들과 단체로 온 중년 관객 등 남녀노소로 만석이었다. 지난 2008년 초연 때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은 점도 한몫한다.

억울이란 단어가 품은 '중압감'
가볍게 풀면서 주제는 묵직하게
줄거리는 달콤쌉싸름한 블랙코미디

억울한 여자 공연 장면 /수원시립공연단 제공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소도시 커피숍
수수께끼 존재가 유코에 관심 보이며
주변 인물과의 관계 서서히 균열 생겨

연극은 도쿄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한적한 소도시의 30년 된 커피숍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언뜻 보기엔 평화롭고 느긋해 보이지만, 궁금증을 자아내는 수수께끼 같은 요소들이 중간중간 등장한다. 소문만 무성한 특이한 존재 '떨매미',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으나 마을 경제에 도움을 주는 듯 보이는 '에너지 연구소', 유코의 남편 다카다(송진우)가 집필한 그림책에 등장하는 '외로운 사자'.

주인공 유코는 평소 좋아하던 그림책 작가 다카다와 재혼하게 되면서 이곳으로 이사 온다. 지역 주민들은 축하파티를 열어주며 유코를 환영한다. 하지만 수수께끼 존재 '떨매미'에 유코가 관심을 보이면서 차츰 주변 인물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주변 인물, 심지어 남편 다카다조차 '떨매미'가 없다거나, 설령 있더라도 굳이 직접 찾으려는 유코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튀는 행동을 저지하려는 주변 인물들의 눈초리가 거세질수록, 유코는 '떨매미'에 더욱 강하게 매료돼 집착의 끈을 놓지 않는다.

'떨매미'와 '에너지 연구소'는 유코의 집착과 광기를 북돋는 연료이자 유코의 이상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장치다. 유코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존재에 몰두하게 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있게 한다. 반면 이를 저지하는 주변 인물들은 다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고 평화로운 일상에 균열을 내는 유코를 이상하게 몰아간다. 하지만 이들도 단조로운 일상에서 불륜을 통해 남몰래 일탈을 꿈꾼다.

억울한 여자 공연 장면 /수원시립공연단 제공

유머스러운 대사들 중간중간마다
다카다의 그림책 내용이 등장해
결말 의외로 소소하게 웃음 유발
유발26일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서
그 '억울한 유코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억울한 여자'에서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은 유머스러운 대사들 중간중간마다 등장하는 다카다의 그림책 내용이다. 그림책의 주인공 '외로운 사자'는 자신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날카로운 발톱을 뽑아내는 등 이내 세상에 자신을 맞춰간다. 유코는 이런 의미심장한 내용을 집필한 다카다에 끌려 결혼까지 하게 됐지만, 정작 이를 그려낸 다카다는 '외로운 사자'와 비슷한 유코를 이해하지 못한다.

언뜻 친절한 듯 보이나, 다수 의견에 반하는 순간 이상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주변 사람들. 그리고 따가운 시선이 거듭될수록 보란 듯이 집착하며 주류에 역행하는 유코. 결말은 의외로 소소하게 웃음을 유발했다. 공연은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오는 26일까지.

/유혜연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