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로아티아 남쪽 발칸반도에 위치한 몬테네그로는 138만㏊, 인구 62만6천명인 작은 나라다. 2006년 신유고연방에서 분리 독립했다. 국명은 이탈리아어 방언으로 '검은 산'이란 뜻이다. 국가형태를 갖춘 10세기 이후 잦은 외세의 침략으로 곤경에 처했으나 멸하지는 않았다. 지명(地名)이 말해주듯 험악한 산세로 둘러싸인 천혜의 요새 덕이다.
이름조차 낯선 동유럽 소국이 주목받는다. 몬테네그로 사법당국은 지난주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여권 위조혐의로 체포해 조사 중이다. 권씨는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으로 아랍에미리트 두바이행 비행기에 탑승하려다 체포됐다. 지난해 가상 화폐 루나·테라 폭락 사태로 전 세계 투자자에게 50조원 이상 피해를 준 혐의로 쫓긴다. 가상화폐가 휴지통에 버려질 조짐을 보이자 보유지분을 서둘러 매각한 뒤 해외로 도피했고, 국제 미아가 됐다.
권씨가 체포되자 한국 정부는 즉각 몬테네그로에 범죄인 인도를 청구했다. 협약을 맺은 국가라 수일 뒤면 국내로 송환될 것이라 예상됐다. 그런데 미국도 권씨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절차에 나서면서 상황이 꼬이는 양상이다. 미국도 이미 권씨를 같은 혐의로 기소했다. 여기에 싱가포르가 신병 확보 대열에 가세하면서 더 복잡해졌다. 현지 투자자 다수가 권씨를 고소했다고 한다. 국제 쟁탈전으로 비화할 조짐이다.
디지털 자산인 가상 화폐 특성이 4차 방정식을 만들었다. 국경이 따로 없는 초국가 영역에, 피해자도 특정국에 한정되지 않는다. 미국과 싱가포르 말고도 추가 신병확보에 나설 가능성이 농후하다. 몬테네그로 법원이 현행법 위반 혐의를 자국에서 먼저 재판하겠다고 한 점도 변수다. 구금 기간을 30일로 연장했다. 국내 송환이 최소 수개월 미뤄지거나 자칫 미국에 빼앗길지 모른다.
권씨의 행방은 본인 의사가 중요하다. 형량이 무거운 미국보다 한국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국내 경제사범 최고형량은 40년이다. 미국에선 평생을 교도소에서 보내는 경제사범이 많다.
미국 명문대를 나온 30대 수재가 투자자들을 농락했다.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도 사죄하지 않고 도망쳤다. 국내에 송환돼도 피해자 구제 방도가 마땅치 않다. "미 교도소에서 평생 썩게 해야 한다"는 분노가 폭발 지경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