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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9세기 유럽과 미국 대도시는 거리를 메운 마차 행렬이 보행자를 위협했다. 부인 마리 퀴리와 노벨상을 공동 수상한 피에르 퀴리도 마차 바퀴에 깔려 숨졌다. 술 취한 마부가 몰았던 음주 마차였다. 인명 피해가 급증하자 등장한 것이 바로 보행자 전용 인도(人道)다.

그래도 자동차 시대의 교통사고 양상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20세기 전쟁 전사자 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2017년 교통사고 사망자 3만7천여명은 아프간, 이라크 전사자 7천여명을 압도했다. 우리도 1991년 교통사고 사망자가 1만4천여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다행히 교통사고 사망률은 감소 추세다. 도로와 신호체계 등 교통시설 개선과 자동차 공학 발전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제조사들은 에어백, 전자제어, 차체강화 등 운전자를 보호하는 첨단 사양 개발 경쟁에 사활을 건다. 이 덕분인지 2020년 한국 교통사고 사망자는 3천81명으로 확 줄었고, 인구 10만명 당 교통사고 사망률 5.9명은 세계 최하위권이다.

최근 미국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동영상이 전세계 SNS를 달궜다. 주행 중 옆 차에서 빠져나온 바퀴에 걸려 하늘로 치솟았다 뒤집힌 채 떨어진 자동차에서 운전자가 걸어서 나왔다. 피해 차량은 현대자동차그룹의 기아 '쏘울'이고, 바퀴 빠진 가해 차량은 쉐보레 '실버라도'다.

2021년 2월엔 현대자동차그룹의 'GV80'을 몰다가 계곡 아래로 추락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목숨을 건져 화제가 됐다. 타이거 우즈를 살린 GV80으로 호평받은 현대자동차가 이번엔 쏘울로 소비자의 신뢰를 듬뿍 받았으니, 홍보 효과는 몇년 치 광고비에 버금갈 테다.

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자동차 공학에도 그림자가 있다. 급발진 사고다. 차량이 스스로 급가속해 돌진하는 사고다. 전문가들은 첨단 기술의 부작용이라 한다.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할머니가 손주를 태우고 운행하던 차량이 600m 가량을 질주하다 도로 경계석을 타고 날아가 지하통로에 추락했다. 손주는 사망했고, 중상을 당한 할머니는 뒤늦게 사실을 전해 듣고 살아갈 희망을 잃었다.

차종을 가리지 않는 급발진 사고에, 제조사들은 운전자 과실로 몰아 책임지지 않는다. 현대자동차그룹이 급발진 사고 원인 규명과 책임에 대해 전향적으로 솔선수범한다면, 신뢰 자본이 더욱 넉넉해지지 않을까 싶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