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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초등학생 아이들과 책 만들기 수업을 한 지 벌써 3년째다. 스무 명 어린이들이 한데 모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한 권의 책으로 묶어 출판하는 프로젝트이다. 첫 수업 날에는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배우는데, 아이들의 눈이 가장 또랑또랑해지는 순간이 바로 '인세'에 관해 배울 때다. 독자가 만오천원짜리 책 한 권을 서점에서 사면 작가는 얼마큼의 돈을 벌 수 있을까? 아이들에게 질문하면 저요, 저요! 손을 든다. "만오천원이요!" "에이, 그건 말이 안 되지. 종잇값도 들고 인쇄비도 들고, 서점 주인도 책을 팔아줬으니 돈을 벌어야 하잖아. 작가가 다 가질 순 없지!" 내 대답에 아이들은 입을 삐죽대며 금액을 낮춘다. "8천원이요!", "5천원이요!" 나는 계속 고개를 가로젓고 금액은 더 내려간다. "3천원?" "2천원?" 책 한 권 팔릴 때마다 작가의 인세는 10%라고 내가 답을 알려주면 아이들은 우우, 야유한다. "1천500원이라고요? 말도 안 돼!" 하지만 놀랄 일은 그다음부터다. "우리는 스무 명이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드니까 1천500원을 20으로 나눠야 하는데?"

그래, 한 권이 팔리면 어린이 작가 한 명이 받을 인세는 75원이 된다. 아이들은 꺅꺅 소리를 지른다. 성질 급한 아이들은 책 만들기를 포기하겠다고도 한다. 고작 75원인데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야 하느냐고 소리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중에 돈을 벌어본 적 있는 사람, 손들어 볼까?" 너도나도 손을 든다. 할아버지 흰머리를 뽑아주고 천원을 벌었다거나 엄마 심부름을 하고 이천원을 벌었다거나 하는 거다. "아니, 그런 거 말고. 가족들에게 용돈 받은 거 말고 밖에서 어떤 일을 해서 진짜로 남에게 돈을 받아본 적 있느냐고 묻는 거야." 그러면 일순 조용해진다. 그럴 리가 없지. 내가 쓰는 글과 그림이 정말 '돈'이라는 것으로 치환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는 듯 아이들은 진지해진다.

20명이 만든 1500원 짜리 책 한권
인세 받은 아이들 식탁·책상에도
흔히 널린 책들 새삼 다르게 인식


초등 어린이들이 쓴 책이 많이 팔릴 리 없다. 인세는 정말 얼마 되지 않는다. 지난달에 1년간의 인세 정산을 끝내고 보고서를 만들었다. 미성년자 어린이들이므로 양육자들에게 이메일로 정산 보고서를 보내고 인세를 한 명 한 명 입금했다. 3년간 어린이 작가가 된 이들은 약 200명. 나는 휴대전화의 은행 앱을 열고 200명의 어린이 계좌에 인세를 입금하느라 노안이 올 뻔했다. 하지만 중노동의 대가는 황홀했다. 카톡으로, 이메일로 감사 인사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고작 3천550원의 인세를 받은 아이, 1천850원을 받은 아이, 590원을 받은 아이들은 통장에 찍힌 '인세'라는 글자에 감동했고, 난생처음 돈을 벌어본, 그것도 글과 그림을 팔아 돈을 벌어본 환희에 대해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러니 이런 계좌이체 중노동은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될 일이다.

며칠 전 10년 전 출간한 산문집의 지난 분기 인세 정산 보고서를 받았다. 이 책이 아직도 팔리고 있는 거야? 나는 이메일에 첨부된 보고서를 열었다. 보고서에는 '-4천550원'이 찍혀 있었다. 마이너스 인세라는 게 있다고? 잘못 본 줄 알았다. 정산 내역을 보니 반품이 있었단다. 나는 혼자 까르르 웃었다. 아홉 살 내 딸도 책 만들기 프로젝트에 참가한 적 있어서 나는 아이의 통장에 인세를 입금해주었다. 그것도 2천원쯤 되었는데. 딸보다 인세가 적은 엄마라니. 딸에게 인세도 받았으니 치킨 한 번 쏘라 말했더니 기겁을 한다. 자기가 처음 번 돈이라고, 스무 살이 되면 쓸 거란다. 그때까지 잘 간직할 거란다.

꼼꼼히 읽고 작가 비교도 해보고
글 팔아 밥벌이 배우는게 귀엽다


권당 75원의 인세를 받아본 아이들은 책을 다른 눈으로 본다. 식탁에도, 소파에도, 책상에도 흔하게 널린 책들이 새삼 달리 보이는 것이다. 아이들은 책등과 책날개도 유심히 본다. 작가 소개도 작가 후기도 꼼꼼히 읽는다. 내가 쓴 것과 다른 작가가 쓴 것이 어떻게 다른지 관심이 가는 것이다. 그리고 책 가격도 본다. 음, 이 작가는 이 책을 팔아 이만큼을 버는구나, 한다. 나는 그게 귀엽다. 글을 팔아 밥을 버는 법칙을 배우는 아이들이 귀엽다. 그 아이들에게 마이너스 인세도 존재한다는 건 알려주지 말아야지. 이번 주말에도 나는 아이들과 책을 만들러 간다. 이전보다 한층 더 책을 예뻐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그리 피곤할 일이 아니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