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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한 먹방 프로그램에서 대학 구내식당의 인기 메뉴를 소개한 적이 있다. 한 대학의 '짜계치' 레시피가 유행이 됐고, 컵밥과 부대찌개도 침샘을 자극했다. 무엇보다 2천~3천원 대 가격이 놀라웠다. 다른 대학의 육회비빔밥, 오므라이스 등 고급 메뉴 가격도 3천~4천원대로 비현실적이었다.

고물가로 호주머니가 얄팍해진 대학생에겐 이마저도 부담인가. '천원 학식(學食)'이 화제다. 아침 요기를 못한 대학생에게 제공하는 천원짜리 조식이다. 구내식당 가격도 버거워 끼니를 거르는 학생들을 위한 고물가 시대의 대학 복지다. 정부와 대학이 원가를 분담한다.

고물가 고통은 평등하다. 대학생에게 천원 학식이 있다면, 샐러리맨에겐 편의점 도시락이 있다. 만원짜리 한장으로는 식당 밥 먹기 힘드니, 5천원 안팎의 편의점 도시락이 구세주다. 특히 혼밥에 익숙한 MZ세대 샐러리맨에게 삼각김밥, 도시락 등 편의점 식사는 일상이다.

천원 학식과 편의점 도시락의 이면엔 대학생과 젊은 샐러리맨 등 MZ세대의 주목할 만한 소비 패턴이 있다고 한다. 평소엔 가성비를 추구하는 짠돌이지만, 경험할 만한 가치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천원 학식과 편의점 도시락으로 아낀 돈으로 해외여행을 가고, 오마카세를 먹고, 호캉스를 즐기는 극단적인 소비 양극화 현상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천원 조식'을 시식하더니, 정부 지원 예산을 25억원으로 늘려 수혜 대학과 대학생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민주당은 아예 정부와 지자체가 나서 전체 대학을 지원하자고 한 술 더 뜬다. 이런 식이면 대학생과 동년배 청년 취업자의 아침 밥값도 지원해야 맞다. 세대 불문 천원 밥상을 마다할 리도 없다.

형평의 문제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양극화된 소비시장의 중간에서 생계를 꾸리는 수많은 자영업자들도 생각해야 한다. 편의점 도시락 인기에 직장가 음식점 주인들은 울상이다. 천원 학식이 확대되면 대학가 음식점들도 유탄을 맞을 수 있다.

정부와 정당이 MZ 세대에게 제공해야 할 건 마르지 않는 아르바이트와 양질의 일자리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구태여 천원 학식에 줄 서고, 편의점에서 도시락 쟁탈전을 벌일 일이 없다. 그래야 소비 양극화에서 소외된 중간 지대 자영업자들도 살 길이 열린다. 여야의 천원짜리 싸구려 경쟁이 어이 없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