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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는 자연철학이자 공간학이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준말로 묘터를 잡는 음택풍수, 집터와 관련된 양택풍수, 그리고 도시나 마을의 입지를 살피는 양기풍수로 나뉜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자연재해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자니 풍수를 따지지 않을 수 없었고, 여기에 좋은 땅을 찾고 지력(地力)의 도움으로 영화를 누리고자 하는 바람이 만든 지력신앙(地力信仰)이 바로 풍수다. 좋은 터를 잡기 위한 노력은 입지 조건과 형세를 살피는 간룡법과 수구를 보고 좌향을 잡는 포태법(胞胎法) 등으로 구체화한다.

풍수의 중요 요소는 산·수·풍·향 등이며 산에도 오행 또는 오형이 있다. 산의 다섯 가지 형태 중에서 화형산(火形山)이 있다. 산이 암석인 돌산인 데다가 정상부가 뾰족한 두세 개 이상의 봉우리가 있으면 이를 화산, 불기운이 있는 산으로 본다. 2일 화재가 발생한 인왕산은 수도 서울의 사신사 가운데 우백호에 해당하며, 암석으로 이뤄진 돌산이기에 물이 부족하여 화기가 많은 산으로 본다. 아무리 비가 와도 머금지 못하고 금방 다 흘러 내려가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화재는 약 2천500건에 이른다. 조선시대 최대 규모의 산불은 순조 4년(1804)에 발행한 강원도 동해안 일대의 산불로 이때 2천600호의 민가와 사찰 3곳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다 보니 화재에 대한 대비책도 있었고, 전담 기구도 있었다. 가령 세종 8년(1426)에 한성부 대형 화재를 계기로 설치된 금화도감이 그것이다. 금화도감이 해체된 뒤에는 멸화군을 두고 진화를 전담시켰다.

조선시대 방화대책은 광화문 등에 세운 해태상이나 근정전 등 대형건물 좌우에 물을 채워둔 '드므'라는 대형 금속 항아리를 들 수 있다. 특히 숭례문은 불을 상징하는 남쪽의 대문인데다가 관악산이 화산이라 여기에도 해태를 두고 연못을 팠으며 화기를 누르기 위해 현판을 가로가 아닌 세로 형태로 세워두었다.

풍수는 비과학적이지만 자연친화적이었고, 현대 사회의 화재대책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이지만 자연을 이용의 대상으로만 여긴다. 최근 잇따른 대형 산불 사고를 지켜보면서 자연을 무정물이 아닌 신성한 영기를 품은 유정물로 경외(敬畏)했던 풍수사상 같은 자연관을 참고해 깊은 성찰의 기회로 삼으면 좋겠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