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Carl Bernstein)은 자질이 달랐다. 우드워드는 다수의 취재원과 밀착 접촉해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심도 있는 기사를 썼다. 반면 번스타인은 기사 작성에 능하고, '촉'이 좋은 기자였다. 사건 초기에 이미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성격도 달랐는데, 공통분모는 질긴 근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둘은 3년 가깝게 워터게이트 사건에만 매달려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사임을 이끌어냈다. 검찰 기록과 견줄 심층 기사는 저널리즘 역사에도 깊이 각인됐는데, '탐사보도'란 용어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1974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도청장치 설치와 관련, 거짓말이 들통 나 탄핵위기에 몰렸다. 정치인 위증은 미국인들이 혐오하는 죄목이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가결되기 전, 사임의사를 발표하고 백악관을 떠났다. 후임인 제럴드 포드는 닉슨을 사면했고, 검찰은 기소하지 않았다. 이로써 대통령을 사법 심판대에 올리지 않는다는 미 정치사의 전통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여비서와의 추문으로 사법 처리될 뻔했으나 기소되지는 않았다.
성 추문 입막음 의혹으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오후 뉴욕지방법원에 출석했다. 앞서 뉴욕 맨해튼 대배심(大陪審)은 지난달 말 포르노 배우 출신 여성에게 2016년 성관계 폭로 입막음용으로 13만달러(1억7천만원)를 준 혐의로 트럼프를 기소했다.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이 형사 기소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트럼프 기소를 두고 미 언론이 한국 정치를 소환했다. 다수 매체가 "한국과 비슷한 정치 보복과 분열로 치달을지 모른다"는 우려를 전했다. 대표적인 반(反) 트럼프 성향의 뉴욕타임스도 "200년 넘은 원칙을 지켜온 미국 민주주의가 시험에 빠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트럼프는 마녀사냥이라며 정치탄압으로 규정했다. 지지자들 폭동이 우려되는 와중에 지지율은 더 올랐다는 보도가 나왔다. 여론조사에서 30% 넘는 응답자가 '트럼프에 유죄가 선고되더라도 대통령직 수행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정상이 아닌 듯한 미국이 낯설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