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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이 최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한동훈 법무부장관 앞에서 읊조린 '애모' 중 한구절이다. 김건희 대통령부인 수사에 소극적인 검찰을 비판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하지만 정작 작아진 사람은 한 장관과의 설전에서 궁지에 몰리자 맥락없이 애모를 인용한 김 의원 아니냐는 판정이 무성하다.

덕분에 김수희와 애모가 의문의 1승을 거두었고, 대중가요의 힘을 확인해줬다. 동시대의 희로애락을 집대성한 대중가요는 시대의 거울이다. 가수를 떠올리고 노래만 들어도 그 시대의 정서에 잠긴다. 세대와 함께 명멸하고, 명곡과 명반은 세대를 초월한 공감과 감동으로 영생한다.

4일 원로 대중가수 현미가 향년 85세에 타계했다. 각종 방송 프로그램에서 노익장을 과시하며 시청자들과 만난 데다, 사망 전날에도 대구에서 노래교실 공연을 했다니 뜻밖의 부고가 황망하다. 1957년 미8군 무대에서 데뷔한 현미는 이미자, 패티김과 함께 전후 대중가요계를 주름 잡은 1세대 트로이카다.

"밤안개가 가득히 쓸쓸한 밤거리"로 시작하는 '밤안개'는 번안곡임에도 대중의 애창과 열창으로 현미의 대표곡이자 대중가요사의 명곡이 됐다. 동명의 영화 주제가 '떠날 때는 말없이'도 크게 히트했지만, 밤안개에 버금가는 히트곡은 '보고 싶은 얼굴'일 것이다.

'눈을 감고 걸어도 눈을 뜨고 걸어도 보이는 것은 초라한 모습 보고 싶은 얼굴'. 동명의 로맨스 영화 주제가였지만, 전후 실향민들은 북에 남겨둔 가족들 생각에 울먹이며 따라 불렀던 노래다. 아버지 어머니가 한숨 쉬듯 불렀던 노랫말은 실향 2세대의 귀에도 각인됐다.

현미 역시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이다. 이봉조와의 결혼(?)으로 상처 입고도, 거침 없는 발성으로 영원한 현역을 자처한 여장부의 삶을 일궈왔다. 실향이라는 결핍의 소산일지 모른다. 1998년 중국에서 북에 두고 온 동생과 해후한 장면은 전 국민을 울렸다.

현미는 대중가요사의 1세대 디바이자, 1938년부터 엊그제까지 오욕과 영광이 점철된 현대사를 정통으로 맞은 통사적 인물이다. 역사와 시대의 마디 마디를 아프게 건너며 노래했다. 해방 1세대들이 벚꽃처럼 속절 없이 진다. 장엄한 세대 종언이다. 모두 현미의 노래처럼 '밤안개' 속에 '떠날 때는 말없이' 갔지만 오래도록 '보고 싶은 얼굴'일 테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