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가 강둑에 앉아 황허의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무너지는 한(漢) 왕실을 걱정하는 젊은 종친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백년하청을 보며 큰 뜻을 품은 장부와 달리 백성들은 해마다 반복되는 수난(水亂)이 걱정이다. 80만㎢의 방대한 유역을 가진 황허는 수억 톤의 토사를 동반한 잦은 범람으로 중·하류 지역에 재앙을 내렸다. 가문 해엔 농작이 말라붙어 초근목피로 연명해야 한다.
중국 고대사에 전하는 요 임금은 '곤'이란 인물에 '황허의 홍수를 막고 가뭄에 대처하라'며 치수(治水)를 맡겼다. 수년이 지났으나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뒤를 이은 순 임금은 그를 내치고 아들 우에게 대를 이어 임무를 완수하라 명했다. 물을 막는 대신 길을 트는 방식으로 가두고 흘리자 물길이 순해졌다. 우는 10년 넘도록 처자식과 노모가 있는 집 앞을 지나면서도 들르지 않는 독한 집념으로 대업을 완수했다. 순은 물길을 다스린 공을 높이 치하하고 우에게 왕위를 선양했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도 소개된다.
중화에 접한 한반도 땅도 자연재해를 피하지 못했다. 소빙하기로 불리는 17~18세기 100여 년은 가뭄과 여름철 냉해, 해일이 덮치는 대재앙의 연속이었다. 인조·효종·현종·숙종은 유난한 기상이변에 정상적인 국가통치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농경지가 갈라지는 지독한 가뭄이 5년간 이어진 숙종 때가 절정기였다. 숙종은 스스로 '하늘이 내린 왕'이라며 맞섰으나 자연재해엔 역부족이었다.
주중 전국에 단비가 내렸다. 가뭄이 극심한 남부지방에도 50~80㎜ 강우량을 보여 해갈에 도움이 됐다. 충남 홍성지역에 번지던 화마도 진화됐다. 비록 충분치는 않으나 작물 생육에 고마운 자양분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늦은 봄 출하되는 햇마늘이 금값되는 걱정은 덜게 됐다.
식수마저 바닥난 물 부족 사태를 두고도 진·보가 또 다툰다. 한쪽에선 "가뜩이나 모자란 물을 가두지 않고 흘려보내는 바람에 피해가 커졌다"고 한다. 즉각 "인체에 치명적인 녹조를 막고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영산강 보를 부분 개방했으나 최저수위를 지키고 조절한다"고 반박한다. 4대강 사업이 끝난 지 십수 년이 지났는데 보 해체와 복원이 맞선다. 감사원은 10여 년째 감사 중이다. 진영 싸움엔 가뭄도 호재(好材)인가 보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