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을 머리에 쓴 동물은 주로 발굽을 가졌다. 발톱이 좀 더 넓적하고 단단하게 발달한 것이다. 풀밭이든 맨땅이든 자갈밭이든 포식자들의 이빨로부터 달아나기 용이하도록 진화했을 터이다. 이빨이 날카로운 동물은 발굽 대신 발톱이다. 움켜잡거나 가죽을 찢기 알맞게 예리하게 휘었다. '개 발에 편자'란 속담처럼 발굽과 발톱은 본디 서로 어울리기 어려운 것인가.
그렇다면 목마름과 배고픔이 지배하는 초원,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뿔은 과연 축복일까. 숙명적으로 쫓기고 먹히는 자의 머리를 치장한 값싼 화관이나 훈장쯤 아닐까. 포식자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보단 동종 동류로부터 권리를 쟁취하거나 기득권을 지키는 수단이 아닌가. 시인 노천명은 '사슴'에서 '모가지가 길어 슬픈 짐승이여'라고 했다. 그런데 시인이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종종 시청했더라면 '뿔이 아름다워 슬픈 짐승이여'라고 노래했을 지 모른다. 모가지가 길어 사슴이 슬프다면, 기린은 얼마나 더 슬프겠나.
1년 앞둔 총선 벌써부터 판세분석
하마평… 정치 초원에 부는 바람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꼭 1년 남았다. 벌써부터 판세 분석과 하마평이 넘실댄다. 바야흐로 정치 초원에 바람이 일고 있다. 내닫는 발굽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하이에나들도 먹이 탈취 경쟁에 동참한다.
돌이켜보면 1년 앞을 내다본 분석과 전망은 정치꾼과 호사가들의 언론용 '입 털기'에 지나지 않았다. 시쳇말로 '아니면 말고' 식이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총선 판도도 아니고 일개 정당 국민의힘 전당대회도 '내 맘대로 예측'이 난무했다. 안철수의 '철수', 유승민과 나경원의 대표경선 출마, '천아용인'을 앞세운 이준석의 권토중래(捲土重來)까지 설왕설래만 무성했다. 결국 정치는 모를 일이고, 그래서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던가.
요즘 화두는 검찰 출신의 여의도 상륙작전인 듯싶다. 자천타천 정치지망생 명단이 나돈다. 맨 앞줄에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있다. '출마 확률 100%'에서 '절대 안 나온다'까지 전망인지 조언인지 견제인지 함정인지 헷갈리는 논평이 어지럽다. 그는 분명히 송곳니와 발톱으로 무장한 포식자였다. 조선제일검(劍) 칭송도 더해졌다. 그런데 장관이란 정무직 감투와 스타일리시한 차림새에 환호와 박수와 추임새가 더해지면서 '관(冠)이 향기로운' 모양새가 됐다. 이제는 검객이 아니라 조선제일혀(舌)로 불린다. 멋진 뿔 늠름한 수컷 사슴 모습이다. 한때 잘나가던 검사라도 머리에 뿔을 단 순간 피식자일 뿐이다. 게다가 사슴뿔은 귀한 녹용(鹿茸) 아닌가. 호랑이가 가죽 때문에 죽는다면, 사슴은 뿔 때문에 죽는다. 사냥꾼들에게 사슴뿔은 더할 나위 없는 승리의 트로피이다. 관(冠)을 쓰고서 선량(選良)을 꿈꾸는 이들이 명심할 일이다.
이미 뿔 단 신인들 향해 포식자들
하이에나처럼 물고 늘어질 것
'권불십년' 생존율 의외로 낮다
정치판에도 '각자무치'(角者無齒)의 법칙은 적용될 것이다. 이미 뿔을 단 정치 신인은 이빨도 발톱도 뽑혀 나갈 것이다. 이를 아는 포식자들은 하이에나처럼 들개처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피 맛을 본 이빨들이 벌써 군침을 흘리며 으르렁거린다. 백수의 제왕 사자도 천하무적은 아니다. 하이에나 무리의 집요한 집단 공격에 달아나는 수모도 겪고, 독사에 물려 굶어 죽기도 한다. 힘이 빠지면 다른 수컷에 쫓겨난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다. 초원에서 사자 생존율은 의외로 낮다. 적자생존이 아닌가.
머지않아 정치의 초원에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본능적 살육제가 끝나면 뜨거운 태양 아래 숱한 '뿔'이 뼈다귀와 함께 뒹굴 것이다. 그리고 먼지 바람에 실려 잊힐 것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