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개봉한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은 영국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의 삶을 그렸다. 튜링은 해독이 불가능한 독일군 암호를 풀어냈다. 암호 해독기를 개발해 종전을 2년 앞당겼고, 1천400만명의 목숨을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셜록 홈즈' 시리즈로 낯익은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튜링의 다중적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표현해냈다.
당시 연합국은 독일군의 무선통신을 상시 도청했다. 수신은 했으나 '에니그마(Enigma)'란 기계로 암호화돼 내용을 알아낼 수 없었다. 알파벳을 일정한 규칙에 따라 다른 알파벳으로 바꿔 표기하는 복잡한 방식에, 입력할 때마다 규칙이 바뀌도록 설계돼 난공불락이었다.
1938년 암호 해독에 투입된 튜링은 "기계 암호는 기계가 해결해야 한다"며 2년을 매달려 해독기 '봄(Bombe)'을 개발했다. 독일군은 매일 바뀌는 완벽한 체계로 응수해 튜링을 괴롭혔으나 기발한 아이디어로 경우의 수를 줄여 해독에 성공한다. 극 중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내거든"이란 대사가 한동안 회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 등 동맹국 정부를 도·감청해온 정황이 드러났다. 소셜미디어에 유출된 미국 기밀 문건엔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 외교·안보라인의 대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문건엔 '한국 관리들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윤석열 대통령에 전화해 물품(포탄) 전달 압력을 가할지 걱정'이란 대목도 있다고 한다.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미국은 피·아 구분없는 도·감청 행위로 악명이 높다. 국제사회는 "CIA가 마음 먹으면 불가능한 대상이 없을 것"이라 비판한다. 메르켈 전 독일 총리도 10년을 속은 사실을 뒤늦게 알고 분노했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정보당국의 무차별 정보 수집을 폭로한 이후에도 못된 버릇을 고치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후폭풍이 거세다. 대통령실과 외교당국의 미지근한 태도가 기름을 부었다. 야당은 '후쿠시마 원전'에, '대통령실 도청' 메뉴를 추가할 기세다. 어떠한 이유로도 우방에 대한 도청은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은 나빠진 여론을 의식해 '다자간 안보채널'을 외쳐 왔으나 방영이 또 미뤄지게 생겼다.
/홍정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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