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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수 주필
찰나 같은 순간이었지만 '경기·인천'이 지역분할 정치구도의 대안으로 떠올랐던 때가 있었다. '중부권 대망론'. 이한동이 1997년 신한국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서며 전면에 내세운 정치 슬로건이다. 합리적인 중도 민심지대인 수도권과 충청권이 정치의 주역으로 등장하자는 선언을, 언론은 정권 쟁탈전을 초월한 정치 교체론으로 해석했다.

87체제 이후의 정치 지형은 지역패권들의 충돌로 얼룩졌다. 보수와 진보가 영남과 호남을,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부산·경남과 광주·전남과 대전·충청을 분할지배하는 지역패권은 철옹성에 버금갔다. 선거 공식은 간단했다. 지역을 완벽하게 장악하고, 임자 없는 경기·인천에서 땅따먹기로 승부를 봤다. 13대 때부터 개방적인 수도권에 타향받이 정치신인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3김의 공천은 그만큼 힘이 셌다.

중부권 대망론은 이런 정치판을 뒤엎자는 도발이었다. 해공 신익희 이후 모처럼 등장한 경기도 출신 전국구 정치거물 이한동의 주장이라 무게가 실렸다. 3김의 추천으로 시나브로 경기·인천에 스며든 타향받이들에 위협받던 토박이 경·인지역 국회의원 상당수가 뒤를 받쳤다.

결과적으로 이한동의 중부권 대망론은 도전으로 승화되지 못한 채 도발로 끝났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이회창이 승리했다. 이한동은 논산 출신 경기도지사 이인제에게도 뒤져 3위에 그쳤다. 3김의 지역패권은 강력했고, 이한동과 경·인 정치권의 정치력과 대중성은 판을 잠시 흔들 정도였지, 뒤엎기엔 역부족이었다. 


국힘 '내부혁신 포기' 고립 상쇄 기회 날려
민주도 비정상적인 이재명 지배 체제 강화


중부권 대망론이 지역패권 정치의 장막 속으로 사라진지 26년이 지났다. 중부권 대망론을 압도할 정치 교체의 기회가 열렸다. 윤석열 대통령이다. 서울내기 윤석열은 통상적인 정치적 성장 과정을 생략한 채 대통령이 됐다. 보수의 박근혜에 대들고 진보의 문재인을 거부한 검사 경력이 정치 자본의 전부였다. 대중은 그 소박한 자본에서 기성정치를 해체할 희망을 봤고, 때마침 보수 야당의 대선후보 씨가 말랐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교체를 열망하는 합리적인 중도 대중의 선택으로 탄생했다.

지금 정치교체의 희망은 꺾였고 징조는 불길하다. 대통령은 국민의힘의 구세주다. 윤석열이 없었다면 대선도 지방선거도 다 잃고, 다가올 총선 전망도 암울했을 것이다. 구세주 대통령의 뜻대로 전통 보수 정당을 개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준석을 버려 세대확장을 포기했다. 고함치는 윤핵관 장제원, 전광훈을 모시는 김재원, 우유부단한 김기현이 장악한 영남당은 남루하다. 경기도 김학용이 TK 윤재옥에게 패배한 원내대표 선거로 고립을 상쇄할 일말의 기회마저 날렸다.

여당이 내부 혁신을 포기하니 야당의 혁신도 물 건너갔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정상적인 이재명 지배체제를 강화하고, 비판 여론을 윤석열 정부 비난으로 물타면서 버틴다. 대통령을 이완용으로 만들고, 양곡관리법으로 희롱한다. 여당 개혁에 실패한 탓에 야당은 이성을 잃었고, 대통령은 저질 정치판에 갇혔다.

저조한 지지율의 실체는 대통령에게 정치교체의 희망을 걸었던 대중들의 실망이다. 정치교체의 신호탄을 쏘아 올려야 한다. 정치 교체의 출발과 종착점은 상식적인 중도 민심의 본산인 중부권이다. 대통령이 국정과 정치의 중심을 영호남에서 수도권과 충청권으로 옮겨야 한다. 특히 경기·인천이 중요하다.

대통령, 국정중심 영호남서 수도권 옮겨야
패권정치 버리고 '중도민심 요구' 부응 기대


경기·인천은 대통령의 국정목표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중심이다. 하지만 영호남 패권 정치의 변방인 탓에 받은 정치적 수모가 심각하다. 영호남에 정치 공항, 공장, 공공기관이 줄줄이 들어설 때, 수도권은 기계적인 균형발전론으로 발이 묶였다. 경기남부신공항은 가덕도신공항 보다 훨씬 큰 경제성과 안보 이점에도 불구하고 거론조차 안 된다.

대통령은 대구 서문 시장에서 힘을 얻을 것이 아니라 중도민심의 합리적 요구에 부응하는 수도권 국정행보로 정치교체의 희망을 열어야 한다. 대통령이 국정의 중심을 수도·중부권에 집중하면, 정책을 따라 인재가 모인다. 여야가 탁월한 정치 인재들로 경쟁하면, 총선을 계기로 정치교체의 길이 열린다. 대통령이 먼저 패권 정치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실천해야 시작할 수 있는 일이다. 대통령과 중부권 대망론의 만남을 기대한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