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이 직업과 양육을 병행하기 힘든 현실에서 아이를 낳으면 그 부담은 '가까운 다른 여성'에게로 옮겨진다. 마땅히 부담을 함께 책임져야 할 가족 내 다른 남성이나 사회, 기업은 고의적으로, 아니면 짐짓 모른 척하며 뒷짐을 진 사이 여성들은 발을 동동 구른다. 익히 아는 현실이지만 신뢰를 위해 통계를 덧붙인다. 2021년 육아정책연구원이 발표한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한 엄마의 28.6%만이 따로 양육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고 했으며 취업한 엄마의 양육 지원자 중 54.9%가 외조부모, 28.1%가 친조부모였다. 조부모 중 어느 쪽이 주 양육자인지도 중요한 데이터이지만 따로 조사되지는 않았다. 조모라는 것이 너무 당연해서일까?
이것이 '희생'인 이유는 당연하다. 노동의 값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조모가 엄마의 양육을 지원하는 이유는 믿을 만한 혈연관계라는 이유도 있지만, 가사근로자에게 정식으로 일을 맡겼을 때 들여야 하는 '제값'을 아끼기 위한 목적도 분명히 있다. 양육은 정확한 지식과 섬세한 기술, 집중력, 뼈가 굽는 노력이 들어가는 가치로운 노동이지만 조모에게는 임금 대신 월 100만원 남짓의 '용돈'으로 퉁쳐진다. 국가의 취급은 더 심하다. 서울시가 올해 8월부터 지급하는 조부모 돌봄수당은 고작 월 30만원이다. 그조차 수도에 거주하는 선택받은 조부모에게만 주어질 뿐이다.
양육대책, 출산女·외국인 돌봄노동
어떻게 '후려칠' 것인가에만 천착
'저렴·무급노동' 인식 깨지지않아
이 와중에 경악할 만한 소식이 들려온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지난달 최저임금 적용에서 배제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원내 소수정당 의원의 희한한 발상이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공동 발의자에 여당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으며 오세훈 서울시장도 즉각 환영 의사를 표명했다. 싱가포르, 홍콩 등에서 이미 적용한 모델이지만 이곳들은 여전히 저출생에 허덕이고 있어 효과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음에도 '저출생 대책'의 테이블에 올라온 것이다.
이런 종류의 대책은 출산한 여성, 그 여성의 가까운 여성, 심지어는 외국인 여성의 가사·돌봄 노동을 어떻게 저렴하게 '후려칠' 것인가에만 천착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출생률 추락에 경악하면서도 출생을 위해 필수적인 가사·양육은 그저 가정 내 여성이 기꺼이 희생해온, 앞으로도 어떤 여성이든 도맡아야 할 '값싼·무급노동'이라는 인식에서 한 발도 움직일 생각이 없다. 저렴하게 희생해온 여성의 노동력이 너무 달콤해서일까? 달콤함의 결과가 끝도 없이 추락하는 저출생 수치라는 경각심은 언제쯤 공유될까.
결혼하기 싫은 여성 목소리 들어야
그것이 저출생 대책 시작이자 전부
여성의 희생을 볼모로 한 '폭탄 돌리기'를 멈추고, 가사·돌봄 노동에 제값을 치러야 한다. 여성의 부담을 어떻게 남성, 정부, 지방자치단체, 기업이 함께 짊어지고 함께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머리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을 출생의 도구로 볼 것이 아니라, 값싸게 양육해 줄 도우미로 볼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풀타임·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엄마, 가사·돌봄 노동에 전념하는 엄마, 엄마가 될지 말지 고민하는 여성, 노동의 제값을 받지 못하는 엄마의 엄마, 엄마는 되고 싶은데 결혼은 하기 싫은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그것이 저출생 대책의 첫 번째이자 모든 것이다.
/유은수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