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해 최북단 인천 옹진군 백령도에 새 약국이 들어선다.
백령도 주민들은 지난해 8월 섬에 있던 하나뿐인 약국이 문을 닫으면서 몸이 아프면 편의점 상비약으로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 영업시간이 끝나 약을 구하지 못하면 한밤중에라도 부랴부랴 이웃집에서 빌려야 하는 일도 생긴다.
그랬던 백령도에 새로운 약국이 18일 개업을 앞두고 있다. 옹진군청이 민간약국 운영비용 지원 조례를 만들어 섬마을에 약국을 개업할 약사를 모집했는데, 선뜻 나선 이가 있었다. 고향도 아닌, 그것도 육지와 멀리 떨어진 섬마을 진촌리에 '종로약국'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준비 중인 최영덕(73) 약사가 그 주인공이다.
백령도에 내일 개업 최영덕 약사
물류비 부담 컸지만 제약사 도움
첫 근무지 서울 종로 간판명 따와
경기 안산에서 30여 년 동안 약국을 운영하던 최 약사는 지난 2016년 자녀들에게 약국을 물려주고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는 백령도에 하나밖에 없는 약국이 폐업해 섬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걸 뉴스로 접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경인일보 인터뷰에서 "이제는 전국 모든 지역에 약국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약국이) 없는 곳이 있다는 게 궁금해 대한약사회에 전화를 걸어 문의했다"며 "서해의 독도인 백령도의 열악한 상황을 듣고 나서 제 남은 약사로서의 생을 섬 주민들과 함께하기로 다짐했다"고 말했다.

연고도 없는 서해 최북단 섬에서 약국 개업을 준비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과 백령도를 오가는 화물선은 1주일에 세 차례밖에 운항하지 않았고, 여객선도 날씨에 따라 이용할 수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는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도시에서 섬으로 약을 들여오는 것"이라며 "섬 지역인 탓에 물류비가 더 들고, 주문한 약을 공급받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히 국내 대형 제약사들이 이런 소식을 접하고 최 약사에게 도움을 줬다. 대한약사회도 최 약사 사정을 듣고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
최 약사는 "종근당, 녹십자, JW중외제약, 한국휴텍스제약과 인천지역 약품 도매 업체인 인천약품이 물류비 부담 없이 약을 공급해 주기로 했다. 동아오츠카도 섬 지역에는 처음으로 박카스를 배송해 주기로 했다"며 고마워했다. 여러 제약회사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준 덕분에 백령도에 약국을 열 수 있었다는 것이다.
'종로약국'이란 이름을 정한 이유에 대해선 "내가 처음 약사로 근무한 지역이 서울 종로"라며 "새로운 약사의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약국 이름에 종로를 넣었다"고 설명했다.
백령도 주민들은 새 약국이 문을 열 날을 손꼽아 기다려왔다. "섬 주민들에게 약국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알게 됐다"는 최 약사는 "힘닿는 데까지 오랜 기간 약국을 운영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김주엽기자 kjy86@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