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침몰했다. 절대 운항해선 안될 고철덩어리 선박을 무책임한 선원들이 몰았다. 304명의 희생자 중 250명이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었다. 전대미문의 대참사.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슬픔에 눈이 멀고 분노에 질식했다.
나는 그해 5월 22일자 데스크칼럼 '세월호, 우리는 어떻게 답할 것인가'의 서두를 "하늘은 어린 생명을 빌려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열었다. 감당할 수 없는 희생에 담긴 유훈이 제대로 새겨 볼 새도 없이 세월호가 정치권의 지방선거 쟁점으로 격하된 실정을 타박했다. 우리 시대의 부조리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대한민국의 변화를 집대성한 '세월호 백서' 작성을 위해 정파를 초월한 국민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시대의 전환을 위한 각고면려를 회피하면 국민적 공분과 우리의 죄책감은 위선"이라고 맺었다.
정치권으로 떨어진 세월호는 유족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염되고 훼손됐다. 보수진영의 한 정치인은 참사 5주기 전날 단원고 유족들에게 '자식의 죽음을 발라먹는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진보진영의 유명 방송인은 세월호 고의침몰설을 줄기차게 전파했다. 막말 정치인은 정계에서 사라졌고,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는 지난해 최종 보고서에서 세월호 외력충돌설을 부인했다.
어제가 세월호 참사 9주기였다. 오전엔 인천가족공원에서 일반인 희생자 유가족들이 추모식을 열었다. 유정복 인천시장 등이 참석했다. 오후에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거행된 세월호 참사 9주기 기억식엔 여야 지도부가 대거 출동했다. 한 배에 탔던 희생자들이 일반인과 단원고 희생자들로 흩어졌다. 단원고 희생자와 유족들에게 집중된 관심으로 제사상이 갈라졌다. 안산에선 4·16생명안전공원 건립이 시민단체들의 찬반 논란으로 지연되고 있다. 논란은 4·16 즈음에 더욱 격해진다.
정치는 역사적, 사회적 죽음의 유훈마저 오염시킨다. 국민의힘 최고위원 김재원은 4·3의 격을 따지고, 대통령 문재인은 천안함 유족의 "(천안함이) 누구 소행이냐"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지난 9년 세월, 세월호가 정치 수로에서 표류하는 사이에 진상은 모호해졌고, 추모의 마음은 흩어졌다.
국가적 슬픔이 정치적 대립으로 격하된 세월 탓이다. 세월호 희생자의 존엄과 유족의 위엄을 해치는 정치적 야만과 탐욕은 위선일 뿐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