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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똥줄이 탄다. 왜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실패할까?

성공은 재력·정보를 틀어쥔 부모(유전자)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덕일까, 아니면 본인의 피나는 노력의 성과일까? 치열한 과정을 거쳐 현재가 있기까지 자신의 노력·재능·환경 등은 결코 부정할 수 없다. 하나 뭘 해도 술술 풀리는 이가 있는 한편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지는 이도 있다. 급기야 우주의 어떤 초자연적 힘과 연관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두 청년의 대화에 주목하자.

A "굉장한 대저택…, 이런 집에 태어난 아이는 운(運)이 좋은 거야. 불평등하다!"

B "태어난 집이라든가 국가라든가,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걸로 차이가 나는 건 불평등하다고 해도 바꿀 수 없지. 주어진 환경 속에서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이 집 아이도 사회에서의 성공 여부는 본인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해."(중략)

A "그래? 예컨대 운 좋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만화가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만화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가 사회에 존재하기 때문이잖니. 사람의 재능도 사회 본연의 모습에 따라 운 좋게 돈을 벌기도 운 나쁘게 돈을 못 벌기도 해."

B "그렇긴 해. 하지만 재능을 성공으로 연결시키는 건 사회뿐만이 아니야. 만화가도 재능을 연마해서 프로가 되는 거잖아. 그런 노력에 대해선 개인을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A "일리가 있지. 다만 노력하는 습관이 몸에 배는 것도 운에 따른 측면은 있어. 학창시절 '칭찬을 통한 성장'이란 모교 교훈 덕분에 무슨 일이든 열심히 임하게 됐다고도 하잖아. 노력할 수 있게 될지 어떨지는 사회체계나 구조에 좌우된다고 생각해."

B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같은 처지라도 힘들게 공부해서 훌륭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결국 노력은 개인 문제가 아닐까!"

A "운의 차이가 낳는 격차는 모두 개인이 노력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말이지? 운 좋은 사람만큼 노력한 운 나쁜 사람이 격차 탓에 운 좋은 사람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운 나쁜 사람의 노력은 평가받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어."

B "하긴…. 다만 노력도 모두 운에 달렸다는 이유로, 노력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과 동일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 역시 불공평하지 않을까?"

올해 초 일본의 대학공통테스트(한국판 수능) '윤리과목'에 출제된 내용이다.(필자 번역) 이를 두고 현지 SNS에선 "능력만큼 대접받는 '능력주의'에 찬성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더 나은 조건을 가진 누군가와 '공정한 경쟁'은 불가능하다"거나 "능력 있는 부모처럼 '타고난 환경'을 따라잡는 건 노력만으론 힘들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물고 태어난 숟가락 본인 의지 무관
신분·특권 공유할 부모는 운인가?
승자독식 사회 시장경제 역동성 잃어
생애출산 0.78명·노인빈곤율 37.6%
OECD국가중 최악…무거운 숙제다


물고 태어난 숟가락은 본인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다. 신분·특권을 공유할 '부모'는 내가 선택할 수 없으니 모든 게 운인가? 아니 어떤 처지에서건 최소한 노력은 할 수 있지 않을까. 노력의 의지와 습관도 따지고 보면 주어진 환경(가정·학교·사회) 덕분이라면? 인생의 상당 부분이 결국엔 운빨? 진실이라면 유전자 로또에 몰빵해야 한다는 얘긴데.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우린 스스로 결단한 행위 결과엔 책임져야 하지만 운이 초래한 결과엔 책임질 필요가 없단다. 같은 운이라도 주식·도박(내기)처럼 통제 가능한 운(선택 운)과, 태생적으로 신분이나 삶이 결정되는 통제 불가능한 운(비선택 운)은 구분했다. 비선택 운에 따라 소득·능력에 격차가 생겼을 땐, 그 책임을 본인이 질 필요가 없고 사회(정부)가 이를 보전(제도적 보상)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이를 '운 평등주의(Luck Egalitarianism)'라고 하는데, 불가항력적 운의 결과를 최소화하는 게 정의롭다고 봤다. 물론 이에 대한 비판도 만만찮다.

그럼에도 비선택 운이 남긴 상흔이 화석으로 남는 사회가 작금의 대한민국이라면 그건 안 된다. 뭣보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사회에선 시장경제가 역동성을 잃는다. 전쟁도 아닌 평시 여성 1명의 생애 출산수가 0.78명, 10만명당 자살률 23.6명, 노인빈곤율 37.6%란 OECD 국가 중 최악인 우리 사회가 곱씹어 봐야할 무거운 숙제다.

/김광희 협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