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120억원대 전세사기를 저지른 속칭 '건축왕'의 피해자가 또 숨진 채 발견됐다. 이로써 신변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는 3명으로 늘었다. 이들은 모두 20~30대 청년이다.
17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날 오전 2시12분께 인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30대 여성 A씨가 의식을 잃은 상태로 지인에 의해 발견됐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 중 숨졌다. A씨 집에서는 유서가 함께 발견된 것으로 전해졌다.
30대 세입자 극단 선택 '3번째 비보'
A씨는 속칭 '건축왕' B씨에게 전세보증금 9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해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파악됐다. B씨는 공인중개사 등과 함께 지난해 1~7월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세입자 161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A씨가 살던 아파트도 전세사기 피해로 인해 지난해 6월 60가구 가량이 통째로 경매에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A씨가 살던 집 앞에는 '수도요금 체납'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이웃 주민이자 전세사기 피해자인 C씨는 "A씨는 평소 전세사기 피해로 힘든 와중에도 새벽에 일을 나가 밤늦게 퇴근할 정도로 열심히 생계를 꾸려나가던 청년이었다"며 "전세사기 피해로 힘들어하긴 했는데 갑자기 이런 비보를 접해 충격이 크다"고 말했다.
B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20~30대 청년이어서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불과 사흘 전인 지난 14일에는 B씨에게 전세보증금 9천만원을 돌려받지 못한 20대 남성이 생활고에 시달리는 등 괴로움을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보다 앞선 2월28일에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에서 활동했던 30대 남성이 '정부 대책이 굉장히 실망스럽고 더는 버티기 힘들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생을 마감했다.
"사회적 재난 자생여건 마련해줘야"
검찰은 지난달 15일 '인천 미추홀구 대규모 전세사기 중간수사 결과 언론브리핑'에서 "피해자 가운데 청년, 신혼부부가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 상황 등에 따라 피해 규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서진형(경인여대 교수)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는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의 경우 청년 피해자가 다수 발생한 '사회적 재난'인 만큼 정부가 직접적인 금융 지원을 확대해 피해자들이 자생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임시 거처 및 저금리 대출 지원, 심리 상담, 전세피해(조건부)확인서 발급 등 여러 대책을 내놓았지만, 피해자들은 큰 도움이 안 된다며 경매 절차 중단 등 실효성 있는 추가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 일지 참조·관련기사 6면(정부 겉도는 동안… '이미 106채 낙찰')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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