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 청년들의 극단적인 선택이 잇따르고 있다. 17일 인천시 미추홀구 한 주택에서 유서를 남기고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30대 여성이 병원 이송 도중 숨졌다. 이른바 미추홀구 '건축왕'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였다. 지난 14일엔 27세 청년 피해자가, 2월 28일엔 30대 피해자가 같은 선택을 했다.
피해자들은 가증스러운 사기 행각에 살아갈 의지를 송두리째 잃었다. 전 재산인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서 신용불량자가 됐고, 피해를 회복할 희망을 잃으면서 심신이 피폐해졌다. 한 피해자는 사망 전날 어머니에게 2만원만 보내달라고 할 정도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세 명의 청년들을 극단적인 선택에 몰아넣은 미추홀구 건축왕은 현재 공동주택 161채의 전세보증금 125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그가 전세사기에 동원한 소유 주택은 2천700여채에 달하고 이중 65%가 경매 대기 중이거나 절차에 들어간 상태다. 사망 피해자들은 경매로 피해 회복이 무산되자 희망을 접었다. 상상하기 싫지만 유사한 사례들이 재발할 가능성을 염려해야 할 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지난해 터진 건축왕, 빌라왕 전세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수천명에 이른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느려터졌고, 대책은 실속이 없었다. 사기 가해자들의 범죄 수익을 신속하게 보전해 정부가 피해자를 지원한 뒤 구상권을 청구해야 했다. 경매 우선권과 무주택 특혜 부여는 현금 여력이 있는 피해자에 대한 대책에 불과했다. 전세보증금이 전 재산이고, 그마저도 대출로 마련한 피해자들에겐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세 명의 피해자들이 삶의 끈을 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전세보증 관리에 실패한 책임을 통감하고, 피해자 전수 조사에 나서 형편에 맞는 현실적인 지원책을 신속하게 펼쳐야 한다. 피해자들도 당장 닥친 시련이 아무리 가혹해도 극단적인 마음을 먹어선 안 된다. 남은 인생에서 얼마든지 복구할 수 있다는 굳센 마음으로 버텨내기 바란다.
법원은 미추홀 건축왕에게 반드시 세 명의 고귀한 목숨값을 받아내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치명적인 경제적 피해를 발생시킨 경제 사범들을 가벼운 형량으로 사회에 복귀시키는 판결이 누적된 결과를 직시하기 바란다. 사기 살인이 강도 살인보다 가벼울 이유가 없다.
[사설] 전세사기 구제 서두르고 피해자들 맘 굳게 먹어야
입력 2023-04-17 19:41
수정 2023-04-21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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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18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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