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는 우리나라 고유의 부동산 임대방식이자 주택임대차 제도다.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제도로 주택 가격의 일부를 보증금으로 맡기고 소유자의 집을 빌려 거주하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을 돌려받는 방식이다. 경제개발과 도시화의 진전에 따라 1960년대부터 크게 활성화한 제도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주택 1천881만2천 호 중 개인이 소유한 주택은 1천624만2천 호로 86.3%"에 이르며, 전세 비중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전세 제도는 중국의 전당(典當)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부동산학계에서는 거의 정설로 자리를 잡고 있다. '후한서'의 '유우전'에 '전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전당에 의한 임대차는 '고려사' 79권 '식화편'에 "공민왕 5년 6월 하교하길 부유한 자들이 대여하고 이식을 복리로 칭리함으로 빈민들이 아침에 저녁 일을 고려할 수 없을 처지에 이르게 되어 자녀들을 전매하니 가히 슬픈 일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려 시대 임대차가 성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담보로 잡힐 게 없는 서민들은 자신의 자녀를 인질로 잡히고 임대차계약을 맺은 것이다. 전당은 고려 때뿐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있었는데 토지에서 이탈한 농민들을 삯꾼 노동자로 부리면서 이들에게 가옥을 빌려주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전세에 대한 기록은 '황성신문'(1899년 4월)에도 등장하며 일제강점기 총독부에서 펴낸 '관습조사보고서'에도 조선에서는 가옥의 대가 7~8할을 주고 주택을 임차한다는 기록과 함께 월세에 대한 언급도 나온다. 주택문제는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는 삶을 옥죄는 인생의 장벽이었던 것이다.
수도권 일대에 2천700여 채를 보유한 세칭 '미추홀구 건축왕' 남모씨에게 전세 사기를 당한 박모(31·여)씨가 17일 경제적 피해를 이기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했다. 벌써 3명째다. 의식주는 생존의 기본조건인데 정부의 복지정책이 아직도 서민들의 삶을 보듬어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증거다. 말로는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 임차인 보호와 주택 구입 자금지원, 주택도시공사의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등이 있다고 하나 이 모두 서민들이 체감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더 촘촘하고 세심한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