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로 따라 전세 사기 건물 지은 '건축왕'
19일 오후 인천시 미추홀구 경인로(가운데 도로)를 사이에 두고 붉은 바탕으로 제작된 '전세사기 구제' 요구 현수막이 설치된 주상복합 건물(왼쪽 건물과 오른쪽 중앙건물)들이 양쪽에 위치해 있다. 2023.4.19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인천의 특정한 지역이 어쩌다 수천 가구의 피해를 낳은 대규모 전세사기의 먹잇감이 됐을까. 인천지역 도심이 형성·쇠퇴하는 과정에서 그 의문을 풀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오랜 기간 인천 구도심 문제의 활로를 뚫지 못하는 사이, 전대미문의 전세사기 범죄가 도시 공간의 취약해진 틈새를 비집고 들었다.

인천 미추홀구 숭의로터리에서 시작해 경인선 제물포역과 도화역, 인천도시철도 2호선 시민공원역과 석바위시장역 일대를 지나는 국도 '경인로'. 이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주변 지역에 소규모 주상복합과 아파트, 도시형 생활주택, 오피스텔, 빌라 등 집합건물이 난립한 풍경이 펼쳐진다.

신도시 확장하며 원도심 쇠퇴 시작
재건축 성행에 '상업지역 주거지화'

경인일보는 19일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로부터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속칭 '건축왕'의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가구 중 경매에 많이 나온 건물 13곳을 추려 위치, 용도, 가구 수, 준공 연도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건물 13곳 모두 경인로 주변 지역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건축왕은 은행 돈을 빌려 난개발에 취약한 지역에 건물을 세우고 세입자를 모집해 나갔다. → 위치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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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로는 1883년 개항 이전부터 인천과 서울을 이은 '경인가도'에서 출발해, 1930년대부터 지금의 노선을 갖춘 인천 원도심 형성 역사를 함께한 주요 도로다. 인천시는 도시기본계획을 확립한 1976년 이전부터 일찍이 경인로를 따라 주변 지역을 상업지역으로 지정해 상업·업무·판매시설이 들어서도록 했다.

인천시가 도심 외곽으로 신도시 조성 등 시가지를 확장하면서 구도심이 침체하기 시작했다. 인천시가 2000년대 들어서 추진한 구도심 일대 도시재생사업 상당수가 정체·좌초하는 과정을 거치며, 대표적 구도심인 경인로 주변 지역의 쇠퇴도 가속됐다.

이 지역은 2010년대 들어서 역세권 일대 노후 건물에 대한 개발 압력과 각종 규제 완화가 겹치며 주상복합이나 오피스텔 등 소규모 재건축이 성행했다. 이후 '상업지역의 주거지화'가 급속하게 진행됐다.
 

경인일보가 분석한 건물 13곳 가운데 상업지역에 건립할 수 있는 주상복합이 9곳으로 대부분이고 오피스텔 2곳, 도시형 생활주택 1곳, 아파트 1곳으로 파악됐다. 모두 2014~2019년 사이 준공됐고, 가구 수는 20~100가구 사이다. 건축왕이 지은 이들 건물은 수도권에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역세권과 대로 인근이라는 교통 편의성, 새집 선호 성향 등으로 어렵지 않게 세입자를 구할 수 있었다.

2019년 제물포역 근처 주상복합에 입주한 전세사기 피해자 20대 A씨는 "입주 당시에도 제물포역 근처에 신축 (주거용) 건물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짓는 중이었고, 다른 동네보다 확실히 시세가 저렴했다"고 말했다.

결국 구도심 쇠퇴와 난개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도시정책으로 특정 지역 전체가 전세사기의 온상이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와 관련 인천에서는 오피스텔에 관한 연구가 진행됐다.

난개발 취약지, 사기 범죄 온상으로
"도시계획 측면 중장기적 대안 필요"

인천연구원이 2017년 발간한 정책연구과제 '인천시 상업지역의 오피스텔 신축 실태 및 관리 방향' 보고서를 보면, 2017년 6월 기준 인천 지역 오피스텔 6만8천991실 중 2만4천409실(35.3%)이 2015~2017년 사이 준공됐으며, 전체 오피스텔 중 56.4%가 주거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미추홀구의 주거용 오피스텔 비율은 67.1%로 인천 전체 평균을 웃돈다. 미추홀구 상업용지 비율은 2021년 기준 13.2%로 10개 군·구 평균인 4.7%보다 훨씬 높아 상업지역의 주거지화 현상이 더욱 뚜렷하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사건이 피해 회복과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사법 처리 과정을 힘겹게 지나가더라도 구도심 쇠퇴·난개발 구조는 여전히 남아 또 다른 부작용을 낳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인천의 한 도시계획 전문가는 "쇠퇴한 구도심 상업지역이 방치된 결과 또한 건축왕이 마구잡이로 전세사기에 이용할 건물을 짓게 된 요인이라 할 수 있다"며 "이 문제를 도시계획 측면에서 함께 다뤄 중장기적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호·백효은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