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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은경 칼럼니스트
만약 자신이 가진 희망이 헛된 것이라면? 헛된 희망이라도 갖는 게 나을까 아니면 헛된 희망은 애초에 갖지 않는 게 나을까? 이에 대해 갑과 을 두 사람이 각자 의견을 개진한다. 갑은 말한다. "저는 헛된 희망을 품어서 젊은 시절을 허송세월로 보낸 이들을 많이 봤습니다. 사법시험에 다섯 번 떨어진 사람도 있었고, 가수 오디션에 수십 번 떨어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희망은 속임수를 써서 우리를 가서는 안 될 길로 인도합니다. 그런 희망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희망이 물거품이 될 때 희망은 없느니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노예가 되는 걸 경계하는 것이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엔 을이 말한다. "저는 정치를 예로 들어 말하겠습니다. 국민들이 좋은 정치가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무도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니겠습니까. 희망 속에 사는 사람은 음악이 없어도 춤을 춘다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헛된 희망이라도 갖는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여러분은 갑과 을 중 누구의 의견에 동의하는가? 나는 둘 다 일리가 있다고 여기지만 '을'의 의견에 동의하련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기 드 모파상의 단편 '쥘르 삼촌'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 소설은 액자식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화자가 전하는 이야기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마음속 바라는 것 있느냐 없느냐
삶에 중요한 영향… 실현 가능하든

아니든 꿈을 갖고 사는게 바람직


'나'의 아버지는 직장에 다니나 수입이 적어 '나'의 가족은 절약하며 산다. 아버지의 동생인 쥘르 삼촌은 아버지가 기대를 걸었던 유산을 축내고 빈털터리가 되어 돈을 벌러 미국으로 떠난다. 미국에서 삼촌이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는 자기 사업이 잘되어 가고 있고, 여러 해 동안 소식이 없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한밑천 잡으면 돌아가겠으며 그러면 우리는 함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식구들은 툭하면 그 편지를 꺼내 읽었고 집에 오는 사람 누구에게나 보여 주었다. 쥘르 삼촌은 가난하게 사는 온 집안 식구의 유일한 희망인 것이다. 10년 동안 쥘르 삼촌은 소식이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의 희망은 커졌다. 삼촌이 돌아오면 삼촌의 돈으로 조그만 별장을 살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그러던 중 '나'의 작은누나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고, 가족이 다 함께 멀지 않은 '저지'로 짧은 여행을 간다. 배를 타고 여행 가는 날, 배에서 아버지는 굴을 사 주려고 두 딸과 사위를 데리고 수부에게 갔다. 굴 껍질을 까는 수부를 보고 아버지는 놀라 긴장한다. 그 수부가 모습은 달라졌지만 쥘르 삼촌과 똑같이 생겼다고 느껴서다. 수부는 늙고 추하고 주름살투성이였는데 자기가 하는 일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거지꼴을 한 수부가 쥘르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아버지는 선장에게 가서 그 수부에 대해 물어본다. 그 결과 그가 쥘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가 자기들에게 짐이 될까 봐 가족이 피해 다니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물가 상승·경기 침체 '어려운 시대'
모두 꿋꿋이 살다보면 웃는날 올 것


이 소설에서 딱한 처지의 쥘르 삼촌을 외면하는 가족의 이기적인 행동은 비난받아 마땅하나 우리는 '희망'에만 주목하기로 하자. 그들 가족이 헛된 희망을 품은 것이 잘못일까? 난 잘못한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들 가족은 거지 행색의 쥘르 삼촌을 보고 모든 기대가 무너지면서 속아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꼈으리라. 하지만 쥘르 삼촌에 대한 희망을 가진 덕분에 10년 동안 행복한 미래를 상상하며 살 수 있었다. 이처럼 헛된 희망도 힘이 될 때가 있다. 이는 헛된 희망의 긍정적 효과다.

과학자들은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짐을 증명하여 마음의 신비를 밝혀냈다. 마음속에 희망이 있느냐 없느냐가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므로, 실현이 가능하든 안하든 희망을 갖고 사는 게 바람직함은 물론이다. 요즘은 물가상승, 경기침체 등으로 앞날에 대한 희망을 갖기 어려운 시대다. 팍팍한 현실일수록 모두가 희망을 갖고 꿋꿋이 살았으면 한다. 그러다 보면 웃을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

/피은경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