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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미국 앨라배마 주 공공안전 책임자 'L. B. 설리번'이 뉴욕타임스(NYT)를 상대로 명예훼손소송을 냈다. 전면광고 중 경찰의 인권 유린을 비판하는 내용을 문제 삼았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를 변호할 기부금 모금 목적의 광고 문안에 일부 오류가 있었다. 설리번은 잘못된 정보를 수정하라고 요구했으나 NYT가 거부하자 소송한 것이다.

주 대법원은 설리번에 50만 달러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NYT는 연방대법에 상고했고, 1964년 승소했다. 대법은 "명예훼손 원고가 공직자이거나 선거 출마자라면 "언론기관이 허위 사실을 무모하게 무시한다는 인식으로 보도해, 실제적인 악의(actual malice)가 있었는지를 입증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미 수정헌법 1조 '표현·언론의 자유'에 근거한 역사적 판결이다. 이후 언론사를 상대로 한 공직자들의 명예훼손 소송이 급감했다. 공화당 대선 주자였던 '새러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도 2017년 뉴욕타임스 사설과 관련,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뉴스 채널 '폭스뉴스'가 투·개표기 제조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과 1조원(7억8천750만 달러) 배상에 합의했다고 미 언론이 최근 보도했다. 폭스사의 지난해 매출 140억 달러의 5%, 현금 보유분(40억 달러)의 20%에 달한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 명예훼손 소송 합의금 중 가장 큰 금액"이라며 폭스사의 경영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소송은 2020년 11월 미 대선이 끝난 뒤 폭스뉴스가 도미니언의 개표조작 가능성을 반복보도하면서다. "도미니언이 민주당 조 바이든 당선을 위해 투표 결과를 조작했을 수 있다"는 내용이다. 보도를 뒷받침할 증거는 없었으나 찬반 여론이 갈렸다. 패자인 도널드 트럼프는 승복하지 않았고, 지지자들은 백악관 점거를 시도해 미국 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판결이 아닌 합의에 따른 배상이나 언론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는 반응이다. 재판이 불리하게 진행되자 폭스사가 배상액을 줄이려 협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허위보도에 대한 사법부의 잣대가 달라지는 느낌이다. 각국 정부도 가짜뉴스에 대한 경고수위를 올리고 있다. 언론 자유는 마땅히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국내 언론에도 시사(示唆)하는 바 크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