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 미추홀구 일대에서 전세사기 행각을 벌인 속칭 '건축왕'의 피해자들 중 청년 3명은 급기야 세상을 등졌다. 잇따른 비보에 정부가 뒤늦게 경매 유예, 저금리 대출, 피해 임차인 우선 매수권 부여, 공공 매입 등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전셋집에서 내쫓길 처지에 놓인 피해 세입자들의 무너진 일상을 되돌리기엔 역부족이다. 생계난, 거처 문제, 잃어버린 일터, 가정불화, 자녀 양육 등 눈앞에 펼쳐진 암담한 현실에 한 피해자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형사·민사 준비 벅차 회사 그만둬
"급전 필요하면 부업으로 생계 유지"
임시거처 공공임대 입주 대기 '초조'
말다툼 등 가정불화 이어지기도
■ "여보, 생계를 부탁해" 거리로 나선 아내들
미추홀구 건축왕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법 정문, 주안역 광장 등 연일 거리로 나서고 있다. 정부를 상대로 한 기자회견이나 집회 등에 참가한 피해자 중에는 유독 여성이 많이 보인다. 갓난아기를 안고 나온 젊은 새댁도 있었다.
가족 생계를 위해 일터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남편을 대신해 집회에 나선 아내들이다. 이들은 "정부의 대책을 촉구한다"며 울부짖었다.
맞벌이 부부였던 성지영(49·여, 가명)씨는 지난해 8월 회사를 그만뒀다.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라는 사실을 안 직후였다.
남편에게 생계를 맡아달라고 부탁한 성씨는 형사·민사 소송을 준비하고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대책위원회' 활동에 참여했다.
성씨는 "전세대출과 신용대출을 끌어다가 전세보증금을 마련했다. 달마다 250만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며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부업을 구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전셋집 경매 낙찰, "우리 딸, 미안해…" 아빠의 한숨
최근 송기중(33·가명)씨 전셋집이 경매에서 낙찰됐다. 이제 "방을 비워달라"는 낙찰자의 요구 한마디면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4살 딸아이를 데리고 거리로 나앉을 처지다.
힘든 2교대 근무를 하면서도 가족을 생각하며 힘을 냈다는 송씨는 허망할 수밖에 없다.
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인천시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임시 거처로 마련한 공공임대주택 입주를 신청해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운이 좋아 입주를 하게 되면 우리 딸아이의 어린이집부터 급히 알아봐야 해요. 근데 요즘 어린이집 들어가려면 대기가 길잖아요. 참 막막하네요…." 송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직장 잃은 딸, 서운한 말 한마디에 노부모와 연락 끊어
최수영(41·여, 가명)씨는 직장까지 잃었다. 지금은 일용직을 전전하며 민사 소송과 개인회생 신청 등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이런 처지가 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웹디자이너였던 그는 지난 2019년 미추홀구에 있는 직장으로 이직하며 모아놓은 돈에 대출까지 받아 지금의 전셋집을 얻었다.
지난해 추석께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상사의 지시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일에 집중하지 못했다. 버티다 못해 지난달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최씨는 부모님과도 연락을 끊었다. 의지할 데라곤 부모님밖에 없었다. "괜찮다"는 위로의 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부모님은 "네가 알아서 잘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너의 잘못이다"며 최씨를 꾸짖었다. 딸의 딱한 사정에 부모님 속도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최씨는 그 이후 수개월 간 부모님과 연락하지 않고 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안 좋은 생각만 든다"는 최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느낌"이라며 "한동안은 아무도 믿지 못해 집 밖으로 안 나갔다. 예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토로했다.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