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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
이 시대 우리는 조롱받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독립된 국가를 만든 이래 우리는 지난한 역사의 과정을 거치면서 마침내 일정 부분 원하던 바를 이룩했다. 그 이후 필요한 것은 우리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그 경로를 돌아보고 그것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을 자각했을 때 그를 수정하는 데 있다. 시대는 새로움과 전환을 요구하지만 권력은 조롱으로 대답하고 있다. 장자의 말처럼 강을 건넜으면 배를 버려야 하고, 뜻을 드러냈으면 말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그 배가 이제까지의 성공을 보장했기에 산 위를 걷는 데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이 시대를 조롱하고 있다. 역사는 끊임없이 그 때와 그 시간에 맞는 삶의 방식을 요구한다. 지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오고 있지만, 이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는 이들이 그들의 달콤한 권력에 취해 시대를 조롱하고 있다.

지금 과거의 퇴행이 되풀이되리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미 30개에 이르는 대학에서 시국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부패한 일부 기성 교회와는 달리 양심적 종교인들 역시 이 시대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지금 이 정부가 행하는 실책은 외교의 종속성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맹목적으로 편입됨으로써 그 안에 담긴 반시대적이며 반인륜적인 행태로 돌아가려 하기에 위기가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행태를 반복하고 있다. 한 줌의 권력으로 공동체의 삶과 공동선을 철저히 무시한다. 그럼에도 기득권을 독점한 언론은 온갖 현란한 말로 이런 사실을 호도하고 있다. 오히려 언론의 사명을 저버린 채 나아가야 할 방향과 이 사회를 위한 올바른 규범 설정을 더 적극적으로 감추고 있다. 권력에 영합함으로써 그들이 지닌 한 줌의 자본과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아니 어쩌면 근본적으로 무지한 언론일지도 모른다.


역사는 적시적기 삶의 방식 요구
기득권, 그들 이권 위해 전횡·공모
시민들이 몽매한듯 삿된 말로 우롱


문제는 이 사회의 기득권을 독점한 이들이 그들의 이권을 위해 전횡하며 공모하고 있다는 데 있다. 정치권은 적대적 공생관계를 되풀이하면서 변화된 시대와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전환의 노력에 무관심하다. 70년대 산업화 시대에 유효했던 패러다임을 고수하면서 그 단물에 취해있다. 여기에 교육과 문화 자본을 독점한 세력과 고위 관료들이 가세하고 있다. 한 줌의 맹목적인 사학재단은 이 사회를 위해 필요한 새로운 지향성을 이끌어내는 데 전혀 무지하다. 그들은 고등교육과 연구가 지향해야 할 바를 전혀 감지하고 못한다. 다만 지금의 사학 권력을 유지하는데 모든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들은 경제를 빙자하여 지금의 서열화되고 파편화된 산업화 시대의 교육 패러다임을 맹목적으로 되풀이 한다. 이를 감독하고 새로운 교육정책을 펼쳐야할 교육 당국은 연구와 교육에 대한 무지로 다만 현상을 유지하려 할 뿐이다. 그들은 교육을 다만 재정 관리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정치권력과 언론권력을 독점한 모리배들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함을 절감하는 시민들을 능욕하고 조롱하고 있다. 마치 시민들이 몽매한 듯이 온갖 삿된 말로 시대정신을 우롱하고 있다. 삶의 경로가 바뀌었으며 산업화 시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대정신이 필요함에도 자신들이 지닌 한줌의 권력과 자본을 유지하기 위해 시대적 갈망을 억누르고 있다. 시민들은 시대정신을 이미 촛불의 외침으로 잘 보여주었다. 그 외침을 기성 권력이 독점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위기는 증폭되고 있다.

새 시대정신, 공존의 원리 필요해
지금 안 나서면 굴종의 삶 되풀이


새로운 시대정신은 독점 권력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원리를 필요로 한다. 자연과 생명을 경제성장의 객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 원리를 드러낼 수 있는 공생의 원리가 필요하다. 경제위기와 생태계 위기는 이를 외면함으로써 더욱 커지고 있다. 자연적 객체만이 실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상의 것을 감지할 수 있는 감수성이 요구됨에도 다만 물질적 풍요에 잠겨 보이지 않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제는 시민정신으로 새로운 계몽을 향해 나아가야할 때다. 기성 권력의 독점을 깨고 시대가 요구하는 정신을 향해 우리 삶을 바꾸고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 지금 나서지 않으면 과거의 야만과 폭력이 반복되고, 우리는 다시금 그들 모리배에 의해 모욕받는 굴종의 삶을 되풀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신승환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