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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연극 '몬순'(이소연 작, 진해정 연출, 4월13일~5월7일, 백성희장민호극장)은 전쟁에 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전쟁 그 너머까지를 다루면서 평화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가상의 세 나라를 배경으로 3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일상의 삶에 깊이 침투해 있는 폭력과 그 잔혹성을 고발하고 있다.

몬순은 연극의 제목이면서 무기를 생산하는 회사의 이름이다. 연극 제목의 몬순은 비와 바람의 이미지를 통해 전쟁의 폭압을 상징한다. 하늘에서 내리꽂는 미사일의 수직적 상상력과 '모든 방향에서 모든 사람에게 불어오는 바람'이 전하는 광풍의 상상력은 전쟁의 야만을 전면적으로 그리기에 충분하다. 무기를 생산하는 몬순 기업은 군산복합체의 전형이다. 미사일을 생산하면서 동시에 "로켓도 만들어"라며 무기 생산을 정당화한다. 미사일과 로켓을 만드는 기술은 하나다. 드론이 게임으로 쓰일 때는 스포츠산업에 속한다. 하지만 미사일로 쓰일 때는 군수산업에 속한다. 기술주의의 폐해가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사회 에너지 어디에 쓸지 선택할때
지향하는 가치·문명의 수준 결정
연극 '몬순' 제목서 전쟁 폭압 상징


아이젠하워는 1961년 대통령 퇴임 연설에서 군산복합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방대한 군사조직과 거대한 군수산업 간의 결합은 미국인들이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현상입니다. 경제적인 영역, 정치적인 영역 및 심지어는 정신적인 영역에까지 침투하고 있는 전면적인 영향력은 어느 도시, 어느 주 정부, 어느 연방 정부의 사무실에서나 뚜렷이 느껴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오도된 세력이 급격히 팽창하여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존재할 것"이라며 군산복합체의 부당한 영향력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젠하워의 메시지는 냉전의 시기를 지나는 내내, 그리고 조직화한 폭력의 세계화 시대에 치러진 무수한 전쟁에서 단지 경고로만 그치지 않았다.

우리가 사회적 에너지의 역량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사회의 에너지를 어디에 쓸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가 드러난다. 삶을 파괴하는 생산에 집중할지 아니면 삶의 번영을 위한 생산에 집중할지 선택하는 과정에서 그 문명의 수준이 결정된다. 군수산업이야말로 삶을 전면적으로 파괴하는 생산이 아닐 수 없다. 군수산업의 성장은 그 사회적 비용을 지구사회 전체에 전가하면서 지속하고 있다. 사회의 재화와 에너지를 소모하고 낭비하는 선택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폭력과 야만의 시대를 지속할지 아니면 평화와 문명의 전환을 만들어낼지는 우리 사회의 역량에 달려 있다.

폭력·야만이 삶 장악하지 않도록
일상 속 평화의 공론장 활성화를


올해는 정전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평화체제로 전환하지 못한 채 70년이 지나고 있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은 얼마나 건강한가. 공론장은 정책을 결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를 숙의하는 과정에서 공통 의견이 더욱 정교해지는 장소이다. 정부나 의회가 이 공통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공론장에서 평화를 탐구하기보다는 전쟁을 부추기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담론을 퍼트리는 세력이 있다면 경계해야 마땅하다. 좋은 전쟁 따위는 없다. 선한 전쟁 따위도 결코 없다. 명분으로 정당화할 수 있는 전쟁이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지난 역사가 증거하고 있다. 사후적으로 정당화의 논리를 재구성하는 담론의 각축이 있을 뿐이다. 모든 전쟁은 우리 삶의 시간을 앗아가는 몬순의 비와 바람이다.

연극 '몬순'은 전쟁이 '모든 방향에서 모든 사람에게 불어오는 바람'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쟁으로 몰아치는 광풍을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무대화하고 있는 이 작품은 세계 질서가 요동하는 지금 여기를 지나가야 하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힘의 논리에 따른 어느 일방의 목소리가 장악하는 공론장이 아니라 삶의 정치가 활성화하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폭력과 야만의 파괴적 생산이 우리 삶을 장악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일상의 삶 속에서 평화를 탐구하는 담론이 성숙할 수 있도록 공론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성숙한 시민의 비판적 성찰과 참여 없이는 건강한 공론장이 만들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권순대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