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이 또 한 번 주목의 대상이 됐다. 동상은 국무회의의 의결과 국민 성금으로 1957년 건립됐다.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동상 건립에 마음을 모을 정도로, 당시의 맥아더는 대한민국에 각별한 존재였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대한민국의 국체를 지켜 준 영웅을, 무속인들은 신당에 모셨다.
무탈했던 맥아더 동상이 2000년 대 주사파 운동권의 표적이 됐다. 2002년 양주에서 발생한 미군장갑차 여중생 사망사건을 계기로 반미투쟁 전선을 형성한 통일, 노동, 대학 운동권은 상징적 이벤트로 맥아더 동상 철거를 시도했다. 2005년엔 반미 운동권과 보수단체가 자유공원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결국 맥아더는 제 자리를 지켰지만, 반미단체의 뒤끝은 2018년 두 차례 방화로 이어졌다.
최근 논란은 결이 다르다. 동상 하단부를 장식한 인천상륙작전 부조(浮彫) 작품의 역사적 사실 논란이다. 작품은 맥아더 장군이 장병들과 해안의 파도를 가르며 뭍으로 상륙하는 장면을 새겼다. 그런데 이 장면이 1944년 태평양 전쟁 당시 필리핀 레이테섬 상륙장면이라는 지적이 있었고, 지난해 말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이 교체를 주장하면서 일이 커졌다.
인천시는 자문위원회를 구성하고 작품 존치, 교체, 제3의 방안 등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인천상륙작전을 필리핀 레이테 상륙작전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주장도, 70년 가까운 작품의 역사성을 폐기할 수 없다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 인천상륙작전 실사 부조를 제작해 현 작품과 함께 전시하되 사유를 명기하는 방안이 어떨까 싶다.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무기 수출 가능성을 시사하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쟁지역에 살인을 수출하는 국가가 무슨 염치로 국제사회에 한반도 평화를 요청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대한민국을 구하려 6·25 전쟁에 참전한 UN16국도 살인 수출국이었단 말인가.
맥아더 동상 부조 논란은 불과 7년 전 전쟁 고증마저 엉터리였던 당대 역사의식의 후유증이다. 피아가 확실한 전사(戰史)마저 논쟁거리로 만든 역사 인식이 반세기 지나 동상 철거 시위로 터져 나왔다. 북한의 남침에서 겨우 지켜 낸 자유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오늘도 춤을 춘다. 이념과 진영, 사실과 선동 사이에서 흔들리는 한국 현대사가 맥아더 동상 수난사에 고스란히 담겼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