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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음악방송을 듣고 있는데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이 흘러나왔다. 평소 좋아하는 곡이라 반가운 마음으로 듣고 있는데 곡이 끝난 뒤 진행자가 "로드리고 아랑훼즈의 '협주곡'을 들으셨다"고 소개했다. 로드리고의 '아랑훼즈 협주곡'을 로드리고 아랑훼즈의 '협주곡'이라고 잘못 소개한 것이다. 실수를 알아차린 진행자가 서둘러 정정했지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끝내 마음에 걸렸는지, 곡 소개를 잘못해서 불편하셨을 텐데 다음부턴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사과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노련한 진행자가 저지른 뜻밖의 실수에 불편은커녕 안도감마저 느꼈다. 언젠가 비발디의 '2대의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을 '그대의 트럼펫을 위한 협주곡'으로 잘못 소개한 다른 진행자도 있었고 보면 이런 실수는 흔하기도 하고 또 생방송에서만 만날 수 있는 각별한 재미라 하겠지만 무엇보다 요즈음 같은 인공지능(AI)시대에는 실수하는 인간(Homo Error)이 아름답다는 생각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에 인류는 오랫동안 다른 존재와 인간을 비교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해왔다. 고대의 동아시아인들은 인의예지(仁義禮智)와 같은 덕목을 기준으로 도덕적 존재(Homo Ethicus)로서 인간을 규정했고, 근대의 데카르트는 이른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명제를 내세워 생각하는 존재(Homo Sapiens)로 인간을 규정했다. 그 외에도 인간만이 미래를 전망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전망하는 인간(Homo Prospectus), 인간만이 예술과 같은 창조적 작업에 몰두한다는 사실을 내세워 창조하는 인간(Homo Creatura), 인간만이 놀이에 몰두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라는 말을 만들기도 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 '인공지능시대'
더 이상 '인간만'이라 규정할수 없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시대에 이런 말들은 더 이상 인간만을 가리키는 규정일 수 없게 되었다. 가령 흔히 목격하는 인간의 악행을 두고 생각해보면 인종차별도 하지 않고 혐오 발언도 하지 않는 인공지능의 도덕성이 인간만 못하다고 단정할 수 없을 것이다. 전망하는 인간과 창조하는 인간도 설 자리가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인공지능의 계산에 따라 기후를 예측하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일이 예사이고 보면 인간보다 인공지능의 예측력이 더 뛰어난 것처럼 보이고,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미술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는 결과가 보도되는 걸 보면 창작에서조차 인간은 더 이상 다른 존재와 구분되는 독점적 지위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앞의 세 인간에 비해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의 사정은 조금 나아 보인다. 독일의 철학자 리하르트 프레히트는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이야기하며, 컴퓨터는 인간과 달리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자신의 앎을 비판할 줄도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이세돌을 격파한 알파고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하고, 바둑이 무엇인지 모르며, 인간이 왜 바둑을 두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그는 인간이 놀이와 게임을 하는 이유를 기계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레히트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왜 놀이를 하는지 인간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동의하기 어려운 독자들은 등반가 조지 말로리가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 오른다"고 대답한 말을 상기해보면 된다. 게다가 인공지능 간의 바둑대회가 뉴스거리가 되는 걸 보면 놀이 또한 인간만의 영역이라 주장할 수 없게 된 것이 분명하다.

창작에서 조차 독점적 지위 못누려
앞으로 많은 영역 사람 능가할 것
'뜻밖의 실수' 우리만이 할 수 있어


이렇듯 앞으로 인공지능은 많은 영역에서 인간과 구분되지 않거나 인간을 능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실망할 것 없다. 역설적으로 인간이 인공지능만 못하다는 점이 인간을 인간이게 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약점과 실수로 가득 차 있다. 노련한 방송 진행자가 저지른 뜻밖의 실수처럼 인간은 실수하는 존재, 호모 에로르(Homo Error)다. 인간의 실수는 언제까지나 인공지능이 범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자동차가 인간보다 빠르다고 해서 육상대회가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인공지능이 나보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해서 내가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는 않으리라.

/전호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