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용 중인 정신과 약만 7가지입니다."
올해 초 권준오(37)씨는 휴직계를 냈다. 4년 전부터 전세 사기 피해자 450여 명의 대표로 앞장서며 관련 소송만 300~400건을 소화해 온 끝에 내린 결정이다. 생계를 유지하려면 직장생활을 병행해야 했기에 그간 권씨는 전부 '공판 출석'이란 이유를 들며 연차와 반가를 냈다. 여전히 지독하게 남은 송사의 압박감을 버티기 힘겨워 권씨는 네 달째 휴직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다.
쉬는 동안 인천 등 곳곳에서 안타까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과거 권씨와 유사한 피해를 입은 이들의 비극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보며 "처음 (피해를 인지했을 때) 느낌이 떠올랐다"며 "그때 안 좋은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왜 그랬지' 하는 자괴감에 괴로웠고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분들도 많았다"고 심정을 털어놓았다.
권씨는 그럴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우리가 잘못한 게 아니고 사기를 친 사람이 잘못한 것이니 자괴감 갖지 말자"며 주변까지 다독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도 사태가 장기화하고 여전히 미회수액만 100억원이 넘는 상황에 지치기 시작한 것이다. 3개월여 뒤 휴직 종료를 앞두고 권씨는 힘겹게 "일단 안정만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몇년간 수백건 소송 소화해도 회수 못해… 후유증 오래 남겨
자금 흐름 복잡하면 사기 입증 어려워… 위법성 검토까지 장기간 소요
이 같은 전세사기 피해는 세입자들 재산의 상당 부분을 앗아가는 피해를 안겨 후유증마저 오랫동안 남긴다. 2019년 수원 일대에서 250억여원대 전세 사기를 벌인 변모(63)씨는 지난해 1심에서 사기 등 혐의로 징역 9년을 선고받고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임차인 400여 명에게 전·월세 보증금 248억원을 반환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데, 1심에서 인정된 피해 규모는 206명의 128억여원 뿐이었다.
특히 전세 사기 범행 특성상 자금 흐름이 복잡하면 사기 입증이 어려운 실정이다. 변씨는 가족 일가와 지인 등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수법으로 은닉하면서 재판장에서는 "사업 부도 때문에 변제 능력이 없다"는 취지로 주장했는데, 최근 법원은 변씨의 가족 간 부동산 거래를 '사해행위'로 판단했다.
4년 동안 피해자 측 집단 소송을 맡는 법무법인 태현의 손후익 국장은 "가족들과 지인 관계를 모두 파악한 뒤 숨겨진 재산을 직접 추적하면서 사해행위 등 위법성 여부까지 검토하는 데 장기간이 걸렸다. 피해자 입장에서 입증하기 굉장히 어려운 구조"라고 설명했다.
/김산기자 mountai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