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칭 '건축왕'의 전세사기 행각이 벌어진 인천 미추홀구 일대 대학가에서 전세사기로 의심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26일 경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 미추홀구에 있는 인하대 인근 원룸형 빌라 5채가 최근 잇따라 경매에 넘어갔다. 이 건물 세입자 중 월세를 제외한 40여 명이 전세 계약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주로 전세보증금 4천만~6천만원에 집주인 A(44)씨와 계약을 맺었으며 전세보증금 총액은 약 20억원으로 추산된다.
이 건물에 사는 세입자 대부분은 인하대와 인하공업전문대 등에 다니는 20~30대 학생들이다. 집이 매각되면 최우선변제금을 제외한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처지에 놓였는데, 학기 중 전셋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에 학생들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인하대 재학생인 세입자 박모(27)씨는 "원래 본가인 서울에서 통학하다가 3학년 때부터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 원룸 전세를 얻었는데, 3주 전쯤 집을 계약한 공인중개사무소에서 집이 경매에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이 일로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잠도 못 잤다"고 토로했다.
인하대 인근 원룸 5채 잇따라 경매
인당 4천만~6천만원 총 20억 추산
피해를 본 세입자들은 얼마 전부터 카카오톡 채팅방을 만들어 대응책 등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은 다음 주에 경찰서를 찾아가 사기 혐의로 A씨 등에 대한 수사를 의뢰할 계획이다.
인하대 재학생인 동생과 이 건물 원룸에 살고 있다는 서모(30)씨는 "변호사를 선임할 형편이 아니라서 인천시가 운영하는 전세피해지원센터에서 상담을 받은 상태"라며 "세입자들은 대부분 집주인과 연락이 끊겼다"고 하소연했다.
세입자들은 A씨가 아닌 실제 집주인이 따로 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실제 집주인인 건축업자가 원룸 건물을 근저당으로 대출을 받아 또 다른 건물을 짓는 등 사업 규모를 확장하고, A씨 등을 통해 자신의 건물에 입주할 전·월세 세입자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40대 세입자는 "이 건물이 경매에 넘어가는 과정이 '건축왕' 사건과 비슷하다"며 "임대업자와 건축업자가 무리하게 빚을 내서 사업을 확장하다 이런 사태가 났는데 세입자들이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경매에서 우선 매수권을 준다 해도 졸업 후 이곳을 떠날 학생들이 원룸을 굳이 왜 낙찰받겠느냐"고 했다.
"변호사 선임 형편 아니라 상담만"
세입자들, 건물주 명의대여 의심
건축왕 남모(61)씨는 2009년 무렵부터 지인 등으로부터 명의를 빌려 아파트나 빌라 건물을 지은 뒤 공인중개사를 채용해 자신의 건물 중개를 전담하게 했다.
남씨 일당은 대출금과 전세보증금 수입에만 의존해 대출 이자, 직원 급여, 보증금 등을 돌려막기 하던 중 불어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처지가 됐는데도 이 같은 사정을 숨기고 임차인들과 전세 계약을 체결해 전세보증금을 편취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하대가 이달 초까지 접수한 전세 피해(보증금 미반환, 사기 등) 사례는 총 29건이다. 인하대는 전세 피해를 본 재학생이 법학전문대학을 통해 법률 상담을 받도록 할 계획이다. 인하대 총학생회도 법무법인과 협약을 맺어 법률 자문이 필요한 학생들을 돕기로 했다.
경인일보는 A씨 해명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변민철·백효은기자 bmc0502@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