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년 전만 해도 영국 선거판에선 온갖 형태의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압권은 표 매매다. 유권자들이 '미스터 모스트(Mr. Most)', 즉 값을 최고로 쳐주는 출마자에게 표를 통째로 넘겼다고 한다. 부패 선거로 악명이 높았던 선거구의 목사가 "표를 파는 사람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경고했단다. 설교 직후 푯값이 급등했다. 푯값에 지옥수당이 붙은 것이다.
영국 의회 'Parliament'의 어원은 '연설과 교섭'의 의미가 담겨있다. 하지만 초창기 영국 의회는 살벌했다. 칼을 차고 출석한 의원들 사이에서 정쟁이 격해지면 칼을 뽑아들었다. 유혈 사태를 방지하려 본회의장 바닥에 칼이 맞닿지 않는 간격으로 두 줄을 그어 놓았다. 의사당 폭력 금지를 상징하는 '소드 라인(Sword Lines)'의 유래다. 영국 의회 발전사는 돈과 폭력을 금하고 말을 푸는 과정이었다.
해방과 함께 이식된 우리 민주주의의 역사도 압축적일 뿐 과정은 영국 의회와 다르지 않다. 정부 수립 이후 선거는 온갖 형태의 부정선거가 난무했다.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로 평생 이룬 업적을 반납했다. 60~70년대 고무신과 막걸리 선거판, 70~ 80년대 체육관 선거, 80년대 대규모 장외집회 선거의 동력은 돈이었다. 2002년 대선 때 발생한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과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자금 10분의 1 발언'을 계기로 2004년 '오세훈 법'이 통과되면서 한국 선거판은 금권과 작별할 수 있었다.
돈은 묶고 말을 푼 지 20년 만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터졌다. 선거 흑역사의 원점으로 회귀한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재명 대표가 사과하고 검찰의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다. 당 간판을 내릴 수도 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성화에 송영길 전 대표가 서둘러 귀국했다.
갑자기 기류가 변했다. 송 전 대표를 엄호하는 의원들이 늘어나더니, 김의겸 의원이 언론 대응을 전담한다고 나섰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섰다. 이 대표는 "박순자 의원은요?"라며 물을 탄다. 급기야 '넷플릭스에 투자한다(양이원영 의원)'거나 '화동 볼뽀뽀는 성학대(장경태 의원)'라며 허위와 과장으로 방미 외교 중인 대통령을 저격한다. 돈 봉투를 말 폭탄으로 덮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 봉투 퇴행으로 말도 신뢰와 품격을 잃었다. 민주당이 게도 구럭도 다 잃을까 걱정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