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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소설가
나는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중이었고 초등학교 2학년 딸아이는 숙제를 하고 있었다. 전날 숙제가 있다는 것을 깜빡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짤막한 글짓기를 하느라 끙끙댔다. 평소답지 않게 공을 들이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그날은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었고, 아이는 몇 시간 후 '꿈'에 관한 글을 엄마와 아빠 앞에서 발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꿈은 물 연구학자다. 깨끗한 물, 맛있는 물, 건강한 물을 연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일이 분도 안 될 발표 시간을 위해 아이는 한참을 끼적이다 결국 숙제를 끝냈다. 그러고선 옷장 앞에 섰다. "오늘 아빠도 오고 엄마도 오니까 제일 예쁜 거로 입고 가야지!" 생전 옷 투정 따위 하지 않던 아이가 그런 말을 하는 게 우스웠다. 나도 아침을 차리는 내내 무얼 입고 갈까 고민하던 차였다. "엄마는 검정 슈트에다 흰 셔츠를 입을 거야. 너도 잘 골라봐." 아이가 가장 예쁘다고 고른 건 태권도복이었다. 흰 도복에 주황 띠를 매고 아이는 등교했다.

작년에는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 수업 참관으로 대신했으니 아이의 교실에 들어가본 건 처음이었다. 아이들의 책상은 하도 작아 조그만 미니어처 같았다.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올망졸망 앉아있었고 저마다 엄마와 아빠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딸아이를 쳐다보며 마스크 속에서 함빡 웃었다. 이렇게 크고 있었구나. 이 교실 안에서.

'꿈' 이야기로 딸의 공개수업 참관
백종원을 '유튜버'로 아는 아이들
언제부턴가 저희들 언어로 '소통'


2학년 5반 담임선생님은 '꿈' 이야기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자꾸 하다 보니 잘하게 되고, 그것이 먼 훗날 직업으로까지 이어지더라는 그런 이야기 말이다. 그래, 꿈이 별건가. 어렸을 적 책만 들입다 읽어대던 나는 책벌레로 자랐고, 결국 작가가 되었다. 전자오락기 게임을 좋아하던 어린 소년은 동네 오락실을 평정했고, 점점 먼 동네까지 원정 게임을 가 승리하고 돌아오더니 결국 게임 개발자가 되었다. 그게 내 딸아이의 아빠다.

선생님은 화면에 세 사람의 얼굴을 띄웠다. 백종원과 이혜정, 그리고 이연복. 요리사들이었다. 병아리들이 신이 나서 와와, 아는 척을 했다. "이분들이 뭐 하는 분인지 아는 사람?" 선생님의 질문에 아이들은 번쩍번쩍 손을 들었다. 딸아이도 냉큼 손을 들었고 선생님이 딸아이를 지목했다. "한번 말해볼까?" 딸아이는 씩씩하게 대답했다. "유튜버요!" 맙소사. 마스크 속 내 입이 쩍 벌어졌다. 다른 아이들도 마구 소리쳤다. "맞아요, 유튜버예요!" "나도 알아요, 유튜버 백종원!"

어릴 때부터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부모님의 요리를 곧잘 따라하다가, 결국 요리사가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할 의도였던 담임선생님은 잠깐 당황한 얼굴이었다. 교실 뒤편에 선 학부모들이 킬킬 웃었고 아이들은 그저 잘 아는 유튜버가 화면에 떠서 재잘재잘 목소리가 컸다.

잔소리해도 저들 규칙대로 자랄 것
온종일 몰고 다닐 담임선생님 감사

학부모 공개수업 날이면 엄마들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명품을 휘감고 나온다더라, 하는 말들은 적어도 나에게는 딴세상 소리다. 교실을 둘러보아도 그런 엄마는 없다. 오랜만에 말쑥한 정장을 차려입은 내가 오히려 무르춤할 지경이었다. 휴먼시아 거지, 행복주택 거지, 개근거지라는 말이 아이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며 신문기사에도 실렸으나 그 역시 나는 못 믿겠다. 이 병아리들은 그저 병아리다. "엄마, 오늘 놀이터에서 자전거를 타는데 어떤 오빠가 '길막'을 했다? 그래서 순간 브레이크를 잡는데 완전 '뇌정지' 올 뻔했어!" 백종원이 유튜버인 줄 아는 딸아이는 언제부턴가 저희들 세상의 언어로 말을 한다. 나는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바르고 고운 말을 제대로 쓰라고 한들 저 병아리들은 저들의 규칙대로 잘 자라날 것이다. 하루에 물 여섯 잔 마시기도 잘 못 지키는 딸아이도 저 알아서 언젠가는 물 연구학자가 되겠지. 아이를 교실에 두고 학교를 빠져나가며 어쨌거나 안심했다. 쫑쫑대는 병아리 스물다섯 마리를 온종일 몰고 다닐 담임선생님께 감사하며 말이다.

/김서령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