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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5박7일 미국 국빈방문 일정을 마치고 어제 귀국했다. 유쾌한 에피소드가 만발했던 정상외교였다. 미국 국민가수 돈 매클린의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국빈 만찬장을 뒤집어놨다. 유려한 영어 연설에 미 상하원 의원들의 기립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정상외교에서 노래한 정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미 의회 연설을 위해 10번 이상 연설문을 수정하고 악센트와 발음 연습에 집중했단다. 미국을 감동시킬 작정을 했나 싶다. 목적이 있었다. 워싱턴 선언이다. 북한 핵을 미국 핵으로 응징한다는 최초의 확장억제 합의 문서다. 바이든은 북한이 핵 공격을 감행하면 "정권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21세기 들어 미국의 국제사회 리더십이 쇠퇴하고,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에 반발하면서 신냉전 시대가 고착되는 형세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서방, 반서방 동맹이 대립했던 구냉전 시대의 이념 대립 구조와 양상이 다르다. 소련 붕괴 이후 세계는 경제 혈관으로 한 몸이 됐다. 신냉전 시대의 약소국들은 안보와 경제 중 우선순위를 가려야 할 국제질서에 갇혔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기록한 '멜로스의 대화'는 냉전의 틈에서 약소국의 중립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델로스 동맹의 맹주 아테네의 항복 요구에 약소 중립국 멜로스는 외교적 수사로 대응하지만, 외교는 무력(武力) 앞에서 무력(無力)하다. 멜로스는 항복을 거부해 아테네에 도륙당했고, 믿었던 스파르타는 외면했다.

핵보유국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동맹의 한 축이다. 역대 정권이 멜로스식 언변으로 달래고 어르는 사이 핵무장국이 됐다. 전략핵으로 미국을, 전술핵으로 대한민국을 겁박한다. 북한의 핵 미사일 한 발은, 대한민국 국력 전부를 능가한다. 윤 대통령이 '워싱턴 선언'을 사실상의 한미 핵 공유로 강조하는 배경이다.

윤 대통령 귀국일,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성명이 거칠다. "독자 핵개발이나 한반도 핵무기 재배치가 불발된 워싱턴 선언"이라며 "대국민 사기 외교"란다. 워싱턴 선언에 대한민국 핵무장 방안이 포함됐어야 한다는 맥락인데, 원전조차 반대했던 정당의 진심인지 헛갈린다. 대통령의 동맹외교를, 민주당은 '성학대'와 '사기 외교' 사이에 처박았다. 내부의 정치 냉전으로 신냉전 시대의 외교 전선이 흔들린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