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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저는 젊었죠. 이상을 꿈꿨고 활기가 넘쳤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허옇고 사망선고만 기다리고 있죠." 임기 마지막 해인 2016년 백악관 기자단 연례 만찬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특유의 조크로 좌중을 흔들었다. "내년 이 자리엔 그녀(She)가 서 있을지도…"라며 민주당 힐러리 대선 후보를 들어올렸다 "방금 페이스북 계정을 만든 고모를 보는 듯하다"고 패대기쳤다.

연설을 마친다더니 "아차 했다"며 죄송하다고 정색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 한마디 해야 하지 않겠어요?" 트럼프가 싸구려 저녁이라 오지 않았다면서도 "(트럼프가) 외교경험이 없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 여러 나라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고 다녔다"고 했다. 당시 공화당 대선주자인 트럼프를 치켜세우는 듯하나 당연히 아니다. "(트럼프가 만난 리더들을 꼽자면) 미스 아르헨티나, 미스 스웨덴, 미스 아제르바이잔…."

123년 역사의 백악관 기자단 만찬에서 현직 대통령은 만신창이에 바보가 된다. 자기 폄하는 양념이고, 권위는 발아래로 내려놓아야 한다. 정적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에 측근들마저 깎아내린다. 수모를 당한 당사자들도 이날만은 대통령의 허언과 무례를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표현의 자유가 이보다 더할 수 없다.

"폭스뉴스 기자분들 많이 보이네요. 지금 공짜 식사를 거절할 입장이 아니겠죠. 폭스뉴스는 이제 도미니언 소유죠?" 지난달 30일 기자단 만찬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폭스뉴스를 안주 삼았다. 지난 대선결과가 조작됐다는 가짜 뉴스로 투·개표기 제작사 도미니언에 1조원을 배상하게 된 처지를 비꼰 것이다.

만찬은 유쾌하나 그렇다고 아무 말 대잔치가 아니다. 7년 전 오바마 대통령은 이란에 억류됐다 풀려난 워싱턴 포스트지 기자를 거론하며 "미국 언론의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우겠다"고 해 박수를 받았다. 바이든도 이날 심각한 어조로 저널리즘의 역할을 강조했다. 간첩 혐의로 러시아에 구금 중인 월스트리트저널 기자와 시리아에 11년째 구금된 미국인 프리랜서 기자의 석방을 촉구하며 "자유 언론은 자유 사회의 기둥이다. 적이 아니다"라고 했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과 돌발 질문에 '도어스테핑'을 중단한 대통령실이 오버랩 된다.

/홍정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