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앨프리드 조셉 히치콕은 서스펜스 영화의 대가로 무성, 유성영화 시대를 거치면서 53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히치콕의 영화 중에서도 '현기증'·'이창'·'싸이코' 등은 그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싸이코'(1960)는 시점도 독특하고 결말의 반전이 압권이다. 예컨대 여주인공 마리온이 샤워 도중에 살해되는 '샤워실 살인' 시퀀스는 영화팬들 사이에서 명장면으로 꼽힌다. 잔인한 그림을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샤워실의 배수구로 핏물이 소용돌이치며 흘러내려가는 신은 히치콕 영화의 창의성과 묘사력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히치콕의 샤워실 살인 장면이 영화사에서 손꼽히는 시퀀스라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샤워실의 바보 이론'은 정치권력의 이해에 따라 경제가 타격을 받는 상황에 관한 경제학이론으로 유명하다. 샤워실에 들어간 성질 급한 바보가 샤워 꼭지를 틀었는데 찬물이 나오자 잠시를 기다리지 못하고 온수 방향으로 끝까지 돌린다. 갑자기 뜨거운 물이 쏟아지니 놀란 바보가 다시 급하게 꼭지를 냉수 쪽으로 튼다. 이번에는 물이 너무 차가워진다. 바보는 다시 꼭지를 온수 쪽으로 돌리며 샤워 꼭지를 돌리는 일을 반복한다.
현실에서 경험했을 법한 일이고, 그에 대한 비유지만 요즘 정치권력자들의 경제정책이 마치 샤워실의 바보 같다.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재임 기간 중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돈을 왕창 푼다. 돈을 너무 푸니 주식에 돈이 몰리고 금융시장에 교란이 일어나면서 인플레이션이 온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테이퍼링(tapering)을 시도한다. 그러자 경기가 침체되고 유동성의 위기에 뱅크런이 일어나고 은행이 파산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다시 돈을 풀어 사태 수습에 나선다. 돈을 풀었다 죄는 스톱 앤 고(stop and go)를 반복하는 사이에 개미들과 영끌족들과 서민들이 큰 피해를 본다.
실리콘밸리은행에 이어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마저 파산했다. 상업 부동산 관련 나쁜 대출과 저리 장기 모기지 등이 많아 불안 요인이 여전하고 정치권력자들의 '스톱 앤 고'가 멈추지 않는 한 이런 위기는 언제나 상존한다. 위기를 피할 길은 올바른 투표로 경제정책에 정통한 정치인을 선출할 수밖에 없다.
/조성면 객원논설위원·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