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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한일 정상회담 때 기시다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긴자의 노포(老鋪)로 안내했다. 스키야기 식당 '요시자와'에서 부부 만찬을 하고 정상들만 2차로 '렌카테이'에서 독대했다. 두 식당 모두 유서 깊은 노포였다. 오래된 가게, 노포엔 시간이 축적한 정서가 있다. 노포 만찬이 양국 관계 정상화를 위한 두 정상의 정서적 연대와 공유로 해석된 배경이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 44번가의 노포 '스타라이트'가 감동적인 뉴스의 주인공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샌드위치 등 간편식을 파는 식당인데 1984년 재미교포 김정민씨가 개업했다. 김씨가 폐업하고 은퇴한다는 소식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한 자리에 모여 깜짝 폐업식을 열었다. 노래로 석별의 정을 나누고 모금한 퇴직금을 김씨에게 전달했다.

'스타'가 되기 전 배고픈 현실은 미국 문화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가난한 배우들과 지망생들이 '스타라이트'의 샌드위치를 씹으며 '스타'를 꿈꾼 세월이 어언 40년이다. 성공한 사람들 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많았을 테지만, 스타라이트는 브로드웨이의 사연이 고이면서 역사가 됐다. 그 역사를 함께한 브로드웨이 사람들이 '스타라이트'의 마지막 또한 역사로 만들었다. 뮤지컬로 만들어도 손색 없는 스토리다.

지난해 6월 냉면 노포 '을지면옥'이 문을 닫자 37년 단골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맛이 아니라 추억과의 이별이 아쉬워 눈물 흘리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을지면옥처럼 전국 대도시의 미로 마다 촘촘이 박혀있던 노포들이 개발의 삽날에 속절 없이 사라지면서, 세대를 이어오던 정서적 연대와 추억도 흩어진다.

그 자리에 SNS 미디어가 지배하는 푸드 포르노가 판을 친다. 인플루언서들이 쏟아내는 맛집을 순례하는 행렬로 주말마다 전국의 노포들은 뜨내기 손님들 차지가 됐다. 폭식과 괴식을 일삼는 먹방 유튜버들이 방문한 식당은 성지가 된다. 배달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식당 주인과 손님은 '별점'을 놓고 신경전을 벌인다. '백종원의 예산시장'은 몰려든 인파로 난장판이 됐다. 노포의 역사는 단시간에 창작할 수 없다.

'스타라이트'의 감동적인 폐점은 40년 동안 '밥 정(情)'을 나눈 주인장과 손님들의 교감 덕분에 가능한 서사이다. 노포는 '맛'과 '정'으로 인생을 추억하는 정서적 방아쇠다. 그런 노포 하나 없다면 건조한 인생이다.

/윤인수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