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일본 규슈 취재여행을 다녀왔다. 규슈는 우리와 여러 인연으로 얽혀 있다. 왜구는 이곳을 거점으로 노략질을 일삼았고, 임진왜란 때는 왜군이 출병했다. 또 태평양 전쟁 말기, 가고시마에는 가미가제(神風) 자살특공기지가 있었다. 사가현 아리타(有田)와 이마리(伊萬里)는 조선 도공 후손들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이곳에서 이삼평과 심수관은 신으로 추앙받는다. 후쿠오카 구치소는 윤동주 시인이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생을 마감한 곳이다. 영화 '동주'는 시인이 생체실험을 받다 숨진 것으로 그리고 있다.
NHK방송 프로듀서였던 다고 기치로는 1995년 윤동주 50주기에 맞춰 KBS와 공동 기획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일본 통치하의 청춘과 죽음'에서 생체실험에 의문을 제기했다. 어쩌면 생체실험은 그렇게 믿고 싶은 우리의 민족감정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지 모른다. 구치소 앞에서 우리 청년들은 일제 만행에 분노하며 적개심을 불태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윤동주 시인이 고문 또는 생체실험을 받다 숨졌다고 생각하면 피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
日 만행에만 집착, 편향될 수 밖에
식민지배 참회·사죄 현장도 봐야
임진왜란도 침략전쟁임을 명시해
하지만 일제 군국주의 만행에만 집착하다보면 역사인식은 편향될 수밖에 없다. 식민지배를 참회하고 사죄하는 현장도 함께 돌아봐야 균형 잡힌 역사인식을 갖출 수 있다. 나가사키 평화자료관과 구마모토 오무타(大牟田) 시 징용희생자 위령비, 사가현립 나고야 성 박물관, 그리고 이시카와 현 윤봉길 의사 기념비는 다른 일본을 만나는 현장이다. 한일 양국은 이곳에서 불행한 과거에서 벗어나,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를 만드는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시민단체가 세운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반성과 사죄하는 장소다. 일본 정부가 건립한 '국립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이 피해자 입장만 강조한 선전장이라면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은 일본 책임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자료관은 가해자로서 일본, 그리고 조선인 피해 사실을 밝히고 있다. 자료관은 설립 목적으로 "가해의 진실을 확인하고 피해자 아픔을 헤아려 전후 보상 실현에 헌신해주길 바란다"고 분명히 하고 있다. 또 원폭으로 조선인 1만2천∼2만2천명이 피폭됐다고 기술하고 있다. 숨기고 싶은 역사를 용기 있게 드러냈다.
조선인 노무자 9천500여 명이 동원된 미이케(三池) 탄광이 위치한 오무타 시도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지 않았다. 징용공 배상 문제가 이슈로 부상하면서 미이케 탄광과 징용희생자 위령비가 주목받았다. 오무타 시는 1995년 징용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하면서 땅을 무상 제공했다. 또 미쓰이를 비롯해 탄광을 운영했던 일본 기업은 비용을 부담했다. 이들은 매년 이곳에서 합동 추도식을 갖는다. 오무타 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미이케 탄광 전시물(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등재)에 조선인 노동자를 동원했다고 적었다. 사가현립 나고야 성 박물관 또한 균형 있는 역사관을 제시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곳에 성을 쌓고 왜군(9군 15만8천명)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했다. 박물관은 "분로쿠 게이쵸 역(文祿·慶長의 役)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침략전쟁이었다. 조선에서는 의병 봉기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힘을 합해 격퇴했다. 그러나 7년간에 걸친 전쟁은 조선 전역에 피해를 미쳤고 헤아릴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며 임진왜란이 침략 전쟁임을 분명히 했다.
기시다 방한·셔틀외교 '양국에 봄꽃'
진정한 사과·용서 한일정진 마중물
기시다 총리 방한과 셔틀외교 정상화는 양국에 봄꽃과 같다. 진정한 사과와 용서는 한일이 앞으로 나아가는 마중물이다. 참회와 용서는 거듭되어도 부족하지 않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