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명품과 짝퉁은 '박음질 한 땀'의 차이가 아니던가. 똑 같은 재료를 구해 디자인을 그대로 베낀 진짜 같은 짝퉁들도 많다. 그래도 소비자의 눈을 피할 수 없는 것이 공들인 만듦새와 깔끔한 마무리 여부이다. 예술적인 디자인과 최고급 원단에 브랜드 관리도 중요하겠지만 여기에 장인의 손길이 더해져야만 비로소 명품이 탄생하는 거다.
진품 가장해 소비자 허영심 자극
장인 설자리 잃고 가짜에 물들어
지난달 29일 서울 한강의 잠수교는 전체가 런웨이 무대로 변했다. 세계 최대 패션그룹인 루이비통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가을 패션쇼를 연 것이다. 지난해 루이비통이 한국에서만 1조7천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미국 블룸버그의 억만장자 인덱스에 따르면 5월 초 기준으로 LVMH회장 베르나르 아르노가 2천50억달러 자산으로 1위이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1천630억달러로 2위이다. 이어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MS의 빌 게이츠, 워런 버핏 순이다. IT나 투자의 귀재보다 '명품'이 최고의 자산인 셈이다. LVMH그룹은 루이비통, 크리스찬 디올, 겔랑, 켄조, 헤네시, 티파니, 태그호이어, 불가리 등 "들어는 봤나?"하는 브랜드의 총 집합체이다.
아마도 루이비통 그룹 최대의 적(敵)은 짝퉁일 것이다. 관세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적발된 물품만 2조2천405억원이다. 루이비통이 2천197억원어치. 대부분이 중국발(發)로, 적발된 짝퉁의 85.7%를 차지한다. 이런 짝퉁도 등급이 있다. A, B, C급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른바 S급은 준 명품의 대접을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중국에 진품과 구별되지 않는 '슈퍼페이크'가 등장했다고 뉴욕타임스가 4일 보도했다. 진품의 5% 가격에 거래돼 명품업체를 위협하고 있다는 거다. 보도에 따르면 원자재를 이태리에서 구입하는 것은 물론 '한 땀 한 땀' 모방하면서 금속 부식 수법은 물론 '8바늘이 아니라 9바늘을 꿰매야 한다는 것도 알 정도'라고 했다. 경우에 따라 슈퍼S급이 진품보다 질이 더 좋을 수도 있다면 이 얼마나 황당한가. 명품업계가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짝퉁 업계도 나름대로 전략이 있다. 너무 똑같이 제작하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집중단속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일반 짝퉁은 그래서 단속을 피하면서 소비자의 눈을 홀리는 수준으로 만든다. '슈퍼페이크'는 아예 진품과 구별하지 못하도록 해 적발하려면 해 보라는 배짱으로 고수익을 노리는 전략이겠고.
정치판도 민주주의 내건 짝퉁정치
진짜 몰아내 '동냥 벼슬' 주인행세
멀리하는 분별력 민주시민의 바탕
자연계의 의태(意態)는 생존을 위한 짝퉁 전략이라 하겠다. 예컨대 봄철의 꽃등에는 꿀벌과 말벌을 닮았지만 엄연히 파리목(目)이다. 새들의 공격을 피하려 침(針)이 있는 벌처럼 꾸민 것이다. 연구 결과 꽃등에는 덩치가 클수록 벌을 정교하게 모방했고, 작을수록 한눈에 짝퉁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부실했다. 새의 눈으로 보면 작은 꽃등에는 날개를 퍼덕여 사냥해봐야 조건비(鳥件費)가 안 나온다. 따라서 공격당할 가능성이 높은 덩치 큰 꽃등에가 진짜 벌에 가깝게 모방한다는 거다. 하지만 너무 똑같이 보이면 새의 눈을 피하겠지만 정작 말벌과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꽃등에 암컷을 수벌이 착각해 구애하게 되면 곤란하지 않겠나. 그래서 완전히 닮지는 않는 '불완전 의태(擬態)'에 머물렀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하튼 진품을 가장한 짝퉁 상품은 소비자의 허영심을 자극한다. 그 결과 장인은 설 자리를 잃고, 소비자는 가짜에 물든다. 정치판도 그렇다. 민주주의를 내건 짝퉁 정치가 진짜 정치를 몰아낸다. 그 결과 주권재민이 아니라 '동냥 벼슬'이 주인이 된다. 짝퉁을 가려내고 멀리하는 분별력이 민주시민의 바탕이다.
/박종권 칼럼니스트·(사)다산연구소 기획위원단